은산교회
 
작성일 : 17-12-29 20:04
설교제목 : 요한복음강해(12:20~26)
 설교일자 : 1980.02.24
 KEY WORD : @ 인자 영광 밀 열매 생명
 성경구절 : 요12:20~26
 관련구절 :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313  

20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21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22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쭈니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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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와 달리 그 내용의 심오함이 앞에서 뒤로 갈수록 깊어지는 특징이 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말씀이 점점 더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기록되어 다른 복음서와는 차별된 특징을 갖는 진주와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구원의 이치에 대한 핵심적인 예수님의 말씀을 보존한 문서이다.



오늘 성경내용과 같이 유월절에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오는데 그 중에는 유대인이 아닌 헬라 사람들도 섞여 있었다.

그 사람들은 아마도 유대인들의 종교에 어떤 구원의 도리가 있는지 궁금했을 것이고 그 연장선상에서 예수님을 뵙고자 하는 요청을 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그 당시 천하를 통치했던 로마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CAESAR AVGVSTVS)도 비밀리에 유대 성전에 경배하는 의미로 자신은 성전에 출석하지 않고 헌금한 일이 있었다.

그는 유대인들이 섬기는 그 신에게 경배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었고 이는 그 시대의 사람들의 신관을 이해 할 구 있는 단서 이기도 하다.

헬라인들도 그런 부류의 사람들로 추정 되는데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에 들어가는 광경을 본 후 예수님의 제자인 빌립에게 예수님과의 면담을 요청했고 빌립은 안드레에게 말하고 함께 예수님에게 전한 사건이다.

이때 예수님은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라고 말씀 하셨는데 자신이 육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통해 본래의 위치로 돌아 가시게 됨을 선포하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기 전에는 하나님의 독생자가 아니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기 전부터 하나님의 독생자의 위치에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는 이 세상에 와서 본인의 임무를 완수한 후 비로서 하나님아버지로부터 독생자의 직분을 맡게 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전 우주의 통치권을 부여 받은 것이다.

오늘 예수님은 “영광”을 받는다고 말씀 하시는데 이 영광은 이 세상에 오기 전 하나님 앞에 있었던 그 위치가 달라질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 의미를 다시 풀어 말하면, 본래의 자리로 돌아 가는 것은 영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완수하신 그 일은 대단히 중요한 사명이었다고 생각 할 수 있다.

그 사명에 대한 내용은 성경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성령의 존재가 그 실마리가 된다.)



예수님이 계속해서 말씀 하시기를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하셨는데 여기서 밀알(A kernel of wheat)은 “곡식의 알”이란 뜻도 있지만 “곡식의 씨”라는 의미도 있다.

예수님이 30배, 60배, 100배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이다.

우리가 주식으로 먹는 쌀과 같은 곡식알이 땅에 떨어져 죽는다는 것은 자기 본래의 모습을 변화 시킨다는 말씀이다.

쌀에는 쌀눈(배아)이 있다.

이것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그 배아는 변화하여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원리이다.

여기에서 죽는다는 원어는 “아포드네스코(ἀποθνῄσκω”) 로서 생명이 소멸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와 같은 변화를 이룬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 예수님의 말씀은 매우 중요하다.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

여기서 “생명”이란 말은 영어의 “Life”로 번역 되었는데 희랍원어는 “프쉬케(ψυχή)”이다.

“프쉬케”는 “영혼”,”영”,”마음”,생명” ,생명체”의 뜻 중에 “살아있는 존재”라는 뜻이 있고 히브리어의 “네페쉬(נֶפֶשׁ)”는 “호흡하는 생물”이란 뜻이 있다.

희랍의 철학자인 플라톤 시대의 전후 기록을 내가 조사해 본 결과 인간의 육체가 이 프쉬케와 합쳐져서 인간이 되는데 사람이 죽으면 이 프쉬케가 육체를 떠나간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육체는 죽고 프쉬케는 죽지 않는다는 말이다.

서양 사람들이 이 프쉬케를 Life로 번역 했는데 그 이유는 옛 교회의 교리에 맞추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어로 생명 또는 목숨으로만 번역한 것도 적절한 번역은 아니다.

이 단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생물학적인 생명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자기본질”, “자아” 혹은 “영”과 같은 뜻이 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은 자기 존재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아를 잃어버릴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거나 귀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생명을 사랑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자기존재(생물학적인 자신)를 너무 사랑하는 사람은 자아를 잃을 것이고 자기존재를 미워하는(과소평가 한다는 의미도 있다.)

사람은 영원한 생명 안에 자아를 보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원어의 뜻을 정확히 풀어낸 해석이다.

이 세상을 살면서 자기존재를 앞세우거나 자신의 종교를 과도하게 내세우는 사람은 자아를 구원받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 세상을 살면서 자기존재를 낮추는 자는 영원한 생명 안에서 자아를 보존 할 수 있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이다.



또 여기서 주목해야 될 사건은 헬라 사람들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장면을 본 후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원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요청대로 그들을 만났고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는 전하지 않았던 진리의 말씀을 그들에게 전해 주셨다.

추측컨데 예수님을 만났던 이 헬라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헬라 지역 교회의 중심인물이 되었으리라 생각 된다.

그것은 이렇게 중대한 말씀을 아무에게나 전해주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예수님 말씀 중에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이란 말씀이 있는데 “섬기면”이란 뜻은 예수님을 따른다는 뜻이고 그렇게 되면 예수님은 섬기는 자들과 같이 있겠다고 했는데 그것은 섬기는 자들과 공존하겠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교인들이 예수님을 심령적으로 섬길 수가 있다면 예수님은 교인들과 같이 공존하고 있다는 뜻이다.

만일 교회 안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이 없다면 예수님은 교인과 공존할 수가 없다는 말이고 공존을 위해서는 예수님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요14:15에”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라”하셨는데 너희가 나의 가르침을 지킬 때 나는 너희 안에 너희는 내 안에 있을 수 있다는 말씀이다.

즉 예수님과 내가 “일심동체”가 되는 것이다.

요15:4”내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안에 거하리라”라는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소금을 물에 넣으면 소금이 물에 녹아서 소금물이 되는데 이때 소금과 물은 동일체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요한복음14장의 예수님 말씀은 우리 신자들이 궁극적으로 성취해야 될 목표이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나 기적 같은 행위들(나사로를 살리신 것, 소경의 눈을 뜨게 한 것, 병자를 고치신 것, 잔칫집의 술을 물로 만드신 것)은 모두 진리 안에서 가능한 순리적인 사건들이다. 

예수님의 행위는 진리에서 벗어난 것들이 있을 수 없다.

종종 세상에서도 이러한 초월적인 힘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사탄이나 나를 방해하려는 영적인 존재들에 의한 행위로 보아야 한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은 이러한 비 진리적인 행위를 구분 해야 하며 어리석은 영적인 존재들의 행위에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다시 한번 예수님의 말씀을 상기하면 “너희들이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켜야 한다. 그리하면 너희와 나는 같이 걸어 갈 것이다.”라는 뜻이다.

예수님과 같이 걸어 가면 나는 예수님과 가까워지고 그리하면 나는 예수님 안에 예수님은 내 안에 함께 있다는 말씀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천국의 진리이다.



백천(白泉)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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