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0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0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0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05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0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0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0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09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12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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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13장부터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까지 24시간동안 일어난 사건에 대한 기록으로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들을 기록하고 있다.
더구나 요한은 말하기를 예수님의 행적은 너무 많아서 모두 기록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요한21:25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13:1절에 보면 예수님이 돌아갈 때를 아셨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아버지에게로 돌아 가실 때를 아셨다는 뜻이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잠시 오기는 했지만 이세상 어디도 예수님이 돌아갈 곳은 아니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와서 그 맡은 사명을 완수하고, 보내신 자 즉 아버지에게로 돌아 가는 것은 필연적인 길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는 자신들의 메시아가 이 땅에 와서 영원히 군림하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세계를 통치 할 것이라는 메시아 사상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들이 선택된 민족(Chosen People)으로서 그들의 민족신 여호와로부터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염원이기도 했다.
만일에 유대 민족이 예수를 깨닫고 그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더라면 이스라엘의 운명은 물론 세계인류의 운명도 달라졌으리라 생각 한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시기전 아버지로부터 받은 중대한 사명이 있었고 이 땅에서 그 사명을 완전히 이루셨음을 알 수 있다.(요한19:30)
그러나 예수님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그 중대한 사명이 무엇인지 아직도 인류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다.
아쉽게도 이 세상은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대신해 주기 위해서 오신 희생물 즉 “어린양”이었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민족신 “여호와”로부터 용서함을 받기 위하여 여러가지 짐승들을 죽여서 번제물로 제사를 드렸던 관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바울이 초대교회에 서신을 보낼 때 “예수님이 이 세상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 가셨다.”언급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명의 전체를 성경 기록으로 모두 알 수는 없지만 12장에서 언급하신 것과 같이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고 구원하러 오심을 알 수 있다.
단지 그 사명은 예수님이 30세 이전에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대부분 이루어 졌을 것이라 추측한다.
아쉬운 것은 우리에게 남아 있는 성경 기록에는 그 근원적인 사명의 모든 것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예수님의 정체성이 기록 되어 있는데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에게 다스릴 권세를 주셨다는 것을 아셨다”(13:3 Jesus knew that Father had put all things under his power)는 것이다.
이 기록이 예수님이 아버지의 독생자임을 증거하는 중요한 근거이다.
요한19:30(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하나님에게는 많은 자녀가 있다.
주기도문에 보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말 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아버지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는 하지만 독생자는 아니다.
독생자란 의미는 하나님의 모든 유산과 권세를 이양 받을 수 있는 존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우주에 많은 신격들이 존재하지만 독생자만이 이 우주를 다스리고 책임지는 권한을 부여 받게 되는데 그 존재는 예수님 이외에는 있을 수 없다.
아버지로부터 이양되는 모든 권한은 예수님이 부활한 이후에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본향으로 가시기전에 아버지께서 모든 권세를 주실 것을 아신 것이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병자를 고치시고 가난한 사람들을 어루만지셨고 이방인에게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소외 받고 고통 받는 자들에게도 사랑을 나누어 주신 분이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과 그들의 민족신이 여호와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중대한 죄를 범했는바 이는 세상 끝 날에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지금도 세상 인간의 배후에는 거짓 된 신격들의 조정에 의해 말세로 가고 있는바 분별 할 수 있는 사람은 알아야 될 것이다.
신자의 사명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짊어진 멍에와 각자에게 주어진 그 멍에를 메고 예수님이 밝혀주신 그 길을 따라 가면서 예수님의 잃어버린 어린 양들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4절에 보면 예수님이 저녁식사 도중에 일어나서 제자들의 발을 씻은 것처럼 기록 되어 있는데 마치 저녁을 먹으면서 발을 씻는 것 같은 표현으로 생각 된다.
그러나 유대인 전통에 따르면 유대인들 신발 특성이 덮개가 없어서 길을 걸으면 발이 더러워 지므로 집에 돌아오면 발을 먼저 씻게 된다.
따라서 이 장면은 아마도 희랍어의 독특한 표현 방법 때문에 식사중간에 발을 씻는 것으로 표현 되어 있지만 실제는 식사 전에 다 모였을 때를 말한 것으로 보인다.
2절에 보면 마귀가 가롯유다의 마음에 들어갔다고 했는데 여기서 마귀는 원어로 “디아볼로스 (διάβολος )“로 “중상자”, ”비방자”란 의미가 있다.
5~6절에 예수님이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기록이 있다.
일반적으로 집주인이 손님을 저녁에 초청 했을 때에는 손님의 발을 씻어 주는데 발을 씻는 일은 그 집의 종들이 한다.
또 집주인이 외출하고 돌아 오면 종들이 집주인의 발을 씻기거나 본인이 직접 발을 씻는 것도 유대인의 관습이다.
누가7:44의 기록에도 그 관습에 대한 대화가 나온다.
누가7:44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것을 겸손의 미덕으로 교회가 해석하는데 이것은 잘못 된 해석이다.
어느 사회든지 어린아이의 발을 씻겨주거나 또는 목욕을 시키는 것은 대부분 어머니의 역할을 맡은 자의 몫이다.
오늘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것은 바로 그 어머니의 마음을 보여준 것이다.
따라서 겸손의 미덕으로 씻어주신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를 돌보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서로를 씻겨주라고 하신 것이다.
신자는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존재이다. 따라서 신자들간에 상대방과 교제함을 마치 어머니가 어린아이를 돌보듯이 하라는 말씀이다.)
8절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제 발은 절대로 씻기지 못하십니다.”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절대로”란 말은 원어에서 부정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말은 부정에 부정을 반복해서 사용한 문장이다.
영어 성경에도 “No, said Peter, You shall never wash my feet”라고 기록 되어 있는데 부정적인 표현을 반복하면서 절대로 안 된다는 거부의사를 강조하고 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자신의 발을 씻어주는 그 진정한 의미를 모른 채 윗사람이 아랫 사람의 발을 씻어 주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베드로의 발을 씻어주지 않으면 베드로와 자신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때 영어로는 “Unless l wash you, you have no part with me.”라고 하는데 part(일부, 부분, 구성원)는 적절한 해석이다.
이 말은 예수님과 우리가 어떤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 말은 우리에게 공통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진리인데 우리가 예수님을 공유하거나 공통부분이 생긴다는 것은 우리가 진리 속에서 예수님과 하나 되는 것을 말하는 중요한 사실이다.
인간은 태어나서 생물학적으로 약25세까지 육체가 성장하며 이후로는 쇠퇴해서 죽게 마련이다.
그 중 대뇌가 가장 오래 유지되는데 이 뇌의 세포수도 점차 줄게 되면 그 활동이 정지되어 죽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는 이세상에서 영적인 어린아이로서 존재하며 예수님과의 공유가 확대 됨으로 끊임없이 성장 하는 것이다.
신자는 이렇게 성장 함으로서 예수님을 따르는 자의 본연의 자격을 취득하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이 베드로의 발을 씻어주지 않으면 상관이 없어지고 공유가 없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을 듣고 발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달라고 요청하는데 이것은 베드로의 적극적인 성격을 잘 표현하고 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귀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런 신앙의 적극성을 보셨던 것이라고 생각 되는데 우리의 신앙도 베드로와 같이 적극적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목욕을 했기에 발만 씻으면 된다고 말씀하시며 그렇지만 너희들 모두가 깨끗한 것은 아니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미 영적인 어린이로서 목욕한 사람에 비유되지만 또한 세상에 속해 사는 사람으로서 계속해서 더러워지는 부분이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의 심령이 항시 깨끗해 지기 위해서는 늘 세상의 먼지와
때를 씻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11절에 모두가 깨끗한 것은 아니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예수님은 누가 자기를 팔아 넘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요한복음을 기록할 당시 결과를 아는 요한에 의해서 의견이 첨부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나 교회는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에 완전함을 유지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항시 세상의 먼지와 때를 씻어내는 노력과 정성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백천(白泉) 김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