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벧전5:3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18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19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 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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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절의 말씀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진정으로 어머니가 아이들의 발을 씻겨줌과 같은 심정으로 행하라는 의미이다.
신자들은 자신의 가르침으로 도움이나 지도를 받아야 할 사람들의 발을 씻겨 줌으로서 그들이 세상생활로부터 쌓인 그 심령의 먼지와 때를 깨끗하게 해주라는 말씀이다.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마5:59)”라고 말씀 하신 것도 외형적이고 형식적인 행동지침이 아니라 서로의 발을 씻어주라는 의미도 있다.
오늘날 세상 생활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이해관계가 설정되면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과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정해지고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은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의 발을 씻어주는 보여 주기식 행동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상반된다.
마태5:39(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15절의 말씀은 너희도 내가 한 것과 같이 행할 의무가 있다는 말씀이다.
16절에서는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다.”라고 말씀 하셨다.
여기서 보냄을 받은 자(Messenger)는 예수님을 말하고 보낸 자(The one who sent him)는 아버지 하나님을 말한다.
이 말씀은 요10:29와 14:28에도 명백히 기록 되어 있다.
오늘 성경구절인 17절에도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말씀 하시면서 16절에 하신 말씀을 강조 하셨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말씀이 명백히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세상 모든 교회와 기독교는 하나님(여호와)과 예수님과 성신이 하나라는 삼위일체사상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 삼위일체 사상을 믿지 않거나 부정하면 이단으로 간주하여 공격을 하고 있다.
삼위일체사상은 AD325년에 콘스탄티누스1세가 소집한 니케아 공의회에 참석한 주교와 교부들이 “성자와 성부와 성신은 동일한 실체”라고 결정 한 것이 그 근원이다.
또 이 삼위일체사상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사람은 아우구스투스 주교로 4세기 알제리와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신학자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철학자이기도 하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무한히 긴 세모 기둥이 있는데 한편으로 보면 성부로 보이고 다른 편으로 보면 성자와 성신으로 보인다는 이론으로 만물이 성부로부터만 오는 것이 아니라 성자로부터도 온다는 것이다.
성자는 성부보다도 작지 않고 동등하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동일한 본질(호모우시우스 ,homousios)이라고 주장했다.
요10:29(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14:28(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 사상은 요10:30에 기록된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I and father are one)”의 내용을 근거로 하고 있다.
또 그가 중요하게 생각 한 것은 구약에 삼위일체 사상이 있다는 것을 표명한 것인데 그것은 “신들(엘로힘)”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엘로힘이 왜 쓰여졌나 하면 유대인이 가나안을 정복할 당시에 애굽과 가나안에는 많은 신들이 등장 한다.
유대인들이 믿는 신은 그 당시 모든 신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과 능력을 모두 지니고 있어서 “엘로힘’이 생기고 이 복합 신은 창조의 능력도 있고 전쟁에서 싸우는 능력도 있고 고쳐주고 재생해 주며 예시하는 능력을 가졌기에 다신론적인 신의 복수형으로 복합 신이 생긴 것이다.
요10:30(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역사적으로 ‘우가리트’(Ugarit) 문서에 나타나는 “엘로힘”이 가나안의 모든 신을 뜻함을 나타내는 것과 관계가 있다.
창세기6장2절에도 “하나님(엘로힘)의 아들들이”에서도 하나님은”엘로힘”으로 기록되어 있다.
출3장4에서도 “엘로힘”을 하나님으로 표기하여 “하나님(엘로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 라고 번역하였다 .
그러나 출애굽기 20:3절에서는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에서 “엘로힘”을 “신들”로 번역했다 .
다시 말하면 “엘로힘은 단수의 신을 가르킬 때는 “하나님”으로, 복수의 신을 가르킬 때에는 “신들”로 번역 됐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한글 및 영문 성경은 “여호와(Yahweh)”를”LORD “로 엘로힘”을 “God”으로 따로 구분하고 분리하여 표기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오늘날 교회에서 삼위일체 사상을 주장하는 이유는 신 구약에 위와 같은 문구 있는 것이 삼위일체에 해당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창6:2(하나님(엘로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출3:4(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출20:3(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가 믿고 있는 삼위일체 사상은 진리가 아니며 예수의 말씀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어떤 학자는 마28장19절의 예수님 말씀이 삼위일체 사상을 내포한 것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한복음을 통해 자신과 아버지는 다른 존재임을 여러번 말씀 하셨다.
16절에도 보내 자가 있고 보냄을 받은 자가 있는데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 보다 크지 못하다고 말씀하셨고, 17절에 그러므로 이 내용을 알고 행하는 자는 복되다고 강조 하셨다.
요10:29(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14:28(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마28: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18절에서 “발꿈치를 들은 자”는 가롯유다를 말하는 것이다.
이때 성경은 구약을 말하며 시편41편9절을 인용한 것인데 이 말은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라 요한복음 저자가 시편의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구약의 내용은 예수님의 일을 예상해서 쓰여진 내용이 아니다.
시편의 내용은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의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서 헤브론으로 가서 제사를 드린다는 명분으로 다윗의 신하 200여명을 데리고 가서 아버지와 전쟁을 했는데 이때 다윗은 아들의 군대에게 쫓겨서 요단강을 건너 도망친 사건이 있었다.
압살롬은 다윗의 모사인 아히도벨이 헤브론에 오자 다윗의 신하와 아히도벨 앞에서 자신이 왕이 됐음을 선포하는데 이 대목에서 다윗이 자신의 신하들과 아들이 자신에 대해서 발꿈치를 들었다고 탄식하면서 여호와에게 “저들을 내 앞에서 물리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이다.
압살롬의 왕위 찬탈 사건은 예수님과 전혀 관계가 없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요한이 구태여 시편을 인용한 것은 신약저자들의 일반적인 종교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사실 예수님의 정신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라 보기 힘들고 신약에는 이런 기록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인지 제자들의 의견인지를 잘 분별 해야 한다.
시편41:9(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20절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세상사람들이 너희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하는 것이고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다시 말하면 세상이 제자들을 받아 들이면 나 예수를 받아 들이는 것이고 나를 받아 들이는 것은 아버지(하나님)을 받아 들이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깊이 새겨서 인식 해야 할 것은 예수님을 믿고 그 길을 따라서 걸을 때 우리는 세상에서 빛의 역할을 하여야 하며 예수님과 하나님을 대신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명감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오늘 사건의 핵심이다.
백천(白泉) 김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