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02 내 아버지의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고 너희에게 말했겠느냐?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03 내가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나에게로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겠다.
0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05 도마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우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0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
0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이제 너희는 내 아버지를 알고 있으며, 그분을 이미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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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의 말씀은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 가기 전에 제자들과 저녁식사를 마친 후 하신 말씀이다.
여기서 “근심하지 말라”의 “근심하다”라고 번역된 동사의 뜻이 달리 번역이 됐다.
이 말은 희랍어로 “타랏소(ταράσσω)”이며 동요하다, 혼란스럽게 하다, 교란하다 라는 뜻이다.
따라서 너희는 동요하지 말고 마음의 안정을 가지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나를 믿으라는 말씀이다.
2~3절의 말씀에서 아버지의 집에 거처가 많음을 암시하는 것은 천국에 있을 곳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인 우리가 천국을 상상하거나 그 내용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천국에 거할 수 있는 장소는 많이 있지만 이제 몇 시간 후 예수님이 그곳에 가셔서 그들이 거할 곳을 준비한 다음 다시 와서 그들을 데려가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신지 2000년이 지났지만 그는 아직 오지 않았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 하신 후 그가 바로 오실 줄 믿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최초의 복음서 기록도 늦게 되었음을 추정 할 수 있다.
요한복음서는 AD71년 당시 로마 장군이었던 티투스(Titus)가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한 이후 AD90~95년(경)에 기록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마가복음은 최초로 기록 된 복음서인데 AD70년경에 기록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약성경에 있는 사도바울의 서신 중에는 성만찬에 관련된 구절(고전11:23~26)외에는 예수님 공생애중 하신 말씀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직접 받은 것과는 달리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거나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도바울 조차도 예수님이 부활 하신 후 다시 오실 것이라고 생각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도 누가17:22~25의 말씀으로 그날을 아시는 분은 오직 아버지뿐임을 암시 하셨다.
만약에 예수님이 정확한 그날을 알았다면 우리가 볼 수 있는 더 많은 기록이 남았을 것이다.
현재 정경으로 채택된 복음서 이외에도 많은 외경들에 예수님의 행적에 대한 기록이 있으므로 신자들은 외경도 공부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 된다.
고전11:23~26(내가 여러분에게 전해 준 것은 주님으로부터 전해 받은 것입니다.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빵을 들어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식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시고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 너희가 마실 때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것입니다.)
누가17:22~25(그리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인자의 날들 가운데서 단 하루라도 보고 싶어 할 때가 오겠으나, 보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더러 말하기를 '보아라, 저기에 계신다', [또는] '보아라, 여기에 계신다'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따라 나서지도 말고, 찾아다니지도 말아라. 마치 번개가 하늘 이 끝에서 번쩍하여 하늘 저 끝까지 비치는 것처럼, 인자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하고, 이 세대에게 버림을 받아야 한다.)
3절에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겠다.”라고 말씀 하셨는데 그 말씀은 예수님이 부활하면 제자들도 인자가 있는 그곳에 같이 있게 된다는 뜻이다.
지난 설교에서 말했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독생자가 되어서 이 우주를 주관하는 주관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 우주의 모든 법칙과 원칙을 세우시고 독생자이신 예수님에게 그 통치권과 주권을 이양한 것이다.
아직도 세상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을 하나님이 주관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지만 그 모든 주권은 예수님에게 있다.
4절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의 말씀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앞으로 벌어질 일도 또한 제자들(자신들)의 생각 밖에 있는데, 예수님은 제자들이 안다고 말씀 하셨다.
여기서 원어의 “오이다테”는 현재시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
따라서 “너희가 앞으로 알리라”의 미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앞으로 부활한 후 가야 할 그 길을 너희는 아는데 그 길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역설적인 의미로 말씀하신 것이다.
5-6절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길”은 인간이 하나님 앞으로 가는 길을 의미 한다.
“생명”은 인간의 육체적인 생명이 아니라 “영적인 생명”을 말하며 이 영적인 생명은 예수님이 주시는 것이며 육신이 살아 있을 때 영적인 생명을 받아야 천국에 가게 된다.
“진리”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모두 포함한다.
이것을 알아야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알게 되고 아버지에게 갈 수 있게 된다.
과학적인 예를 들면, 중력에 의해 모든 물체는 아래로 떨어지는데 비행기는 사람과 무거운 짐을 싣고 하늘을 날아간다.
이때 비행기는 양력이라는 원리, 즉 날개의 윗면과 아랫면에 생기는 공기의 속도차이로 뜨는 힘이 생겨서 하늘을 날아가는 것처럼 천국도 갈 수 있는 원리(진리)가 있는 것이다.
이 원리(진리)가 누구에게 있는가 하면 오직 예수님에게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가장먼저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인데 그 사건이 우리를 진리로 인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한8:32(그리고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미국 독립선언서의 기초작업자중 한명인 토마스제퍼슨이 미국3대 대통령이 되었을 때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져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됨을 감사하는 내용이 그 기도문의 핵심 내용으로 포함되어 있다.
그 기도문대로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인권이 자유로운 나라가 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는 미국을 부러워하고 자유를 갈망하고 있다.
그러나 참 자유는 어떤 것인가?
미국이 아무리 자유롭다 해도 토마스제퍼슨의 자유는 제한된 조건 속에서의 자유이다.
시간과 물질과 환경의 제한을 받는 자유는 참 자유는 아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제한이 없는 참 자유는 오직 예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온다.
예수님 말씀대로 살아갈 때 인간은 진리 안에서 이 세상에서 우리의 심령을 구속하는 “탐욕”,”시기”,”재물”,”쾌락추구’등의 모든 제한 조건을 배제한 참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예수님이 도마에게 하신 말씀”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은 예수님 개인의 Personality가 아니라 길과 생명과 진리를 떠나서는 아버지께 갈 수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의 살길, 즉 저 천국에 가는 길은 시간을 초월해서 예수님을 통해야 한다는 뜻이다.
요한14:5~6(도마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우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
7절은 매우 중요한 구절이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사람들은 “하나님”이라는 말을 쉽게 말하지만 사실 하나님을 모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오시기전에는 사람들은 하나님이라 자처하는 영적 피조물(신)들이 인간과 접촉했고 인간도 그 존재가 하나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예수님과 같이 동행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통해서 진정한 하나님인 예수님의 아버지를 보게 된다.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을 지키고 실천 할 때 가능한 일이다.
이 세상에는 훌륭한 업적을 남긴 세계적인 학자들이 있다.
그들 중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인 ‘사르트르’는 이데올로기에 얽매이기 싫어서 최고 권위를 가진 노벨상 수상을 “자신보다 훌륭한 사람에게 부여하라”며 거절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르트르’의 노벨상 수상 거절 소식을 접하고 대단히 감격 했는데 그는 무신론자였다.
2차대전 당시 원자폭탄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던 ‘오펜하이머’도 세계적인 물리학자였으나 무신론자였다.
또 상대성원리로 유명한 ‘아인스타인’도 무신론자다.
우리는 이렇게 인류에 공헌을 하고 업적을 남긴 학자들이 왜 모두 무신론자였는지 반문을 안 할 수가 없다.
구약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뚜렷하게 기억 되는 인물은 ‘다윗’이다.
예수님을 ‘다윗’의 후손으로 족보에 기록 할 정도로 유대인들의 정신에 뿌리를 박은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우리야’라는 충성스런 부하를 전쟁터로 보내 싸우게 하고 그의 아내 ‘밧세바’와 간통하는데, 우리야가 죽자 밧세바를 아내로 맞아 들이는 패륜아이다.
그가 밧세바를 취해 얻은 두번째 아들이 솔로몬이다.
율법에(출20:1~17) 기록 되기를 “간음하지 말라” 했고 신명기(24:1~5)에는 아내를 얻거나 취할 때에는 분명한 절차가 있어야 된다고 기록 되어 있지만 다윗은 여호와신의 계명을 어긴 사람이다.
또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왕비만 700명, 후궁은 300명을 거느린 부도덕한 인물이다.
솔로몬은 그 당시 정략적인 결혼과 일부다처의 관습 때문에 많은 아내와 첩을 두었다고 하지만 그는 명백히 율법을 어겼고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아 마땅한 인물이지만 아직도 기독교와 이스라엘 사람은 그의 치적만 찬양하고 있다.
또 아브라함은 유대인의 믿음의 조상이라는 상징적인 인물이지만 그가 ‘갈대아 우르’를 떠나 애굽과 그랄에 거주 할 당시 자신의 아름다운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서 팔았던 기록이 나온다.
그러므로 구약을 통해서 우리가 존경 할만한 인물은 손 꼽을 정도로 적은데 그 중 하나가 요셉이다.
출20:1~17(이 모든 말씀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다.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 너희는 너희가 섬기려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서 우상을 만들지 못한다. 너희는 그것들에게 절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나, 주 너희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그 죄값으로, 본인뿐만 아니라 삼사 대 자손에게까지 벌을 내린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수천 대 자손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푼다.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주는 자기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를 죄 없다고 하지 않는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지켜라. 너희는 엿새 동안 모든 일을 힘써 하여라.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희 하나님의 안식일이니, 너희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너희나, 너희의 아들이나 딸이나, 너희의 남종이나 여종만이 아니라, 너희 집짐승이나, 너희의 집에 머무르는 나그네라도,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내가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 주가 안식일을 복 주고,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다. 너희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래야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이 너희에게 준 땅에서 오래도록 살 것이다. 살인하지 못한다. 간음하지 못한다. 도둑질하지 못한다. 너희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하지 못한다. 너희 이웃의 집을 탐내지 못한다. 너희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소나 나귀나 할 것 없이, 너희 이웃의 소유는 어떤 것도 탐내지 못한다.")
신24:1~5("남녀가 결혼을 하고 난 다음에, 남편이 아내에게서 수치스러운 일을 발견하여 아내와 같이 살 마음이 없을 때에는, 아내에게 이혼증서를 써주고, 그 여자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수 있습니다. 그 여자가 그의 집을 떠나가서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었는데, 그 둘째 남편도 그 여자를 싫어하여 이혼증서를 써주고 그 여자를 자기 집에서 내보냈거나, 그 여자와 결혼한 둘째 남편이 죽었을 경우에는, 그 여자가 이미 몸을 더럽혔으므로, 그를 내보낸 첫 번째 남편은 그를 다시 아내로 맞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은 주님 앞에서 역겨운 일입니다.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유산으로 주신 땅을 죄로 물들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아내를 맞은 새신랑을 군대에 내보내서는 안 되고, 어떤 의무도 그에게 지워서는 안 됩니다. 그는 한 해 동안 자유롭게 집에 있으면서, 결혼한 아내를 기쁘게 해주어야 합니다.)
창12:11~20(이집트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는 아내 사래에게 말하였다. "여보, 나는 당신이 얼마나 아리따운 여인인가를 잘 알고 있소. 이집트 사람들이 당신을 보고서, 당신이 나의 아내라는 것을 알면, 나는 죽이고 당신은 살릴 것이오. 그러니까 당신은 나의 누이라고 하시오. 그렇게 하여야, 내가 당신 덕분에 대접을 잘 받고, 또 당신 덕분에 이 목숨도 부지할 수 있을 거요." 아브람이 이집트에 이르렀을 때에, 이집트 사람들은 아브람의 아내를 보고, 매우 아리따운 여인임을 알았다. 바로의 대신들이 그 여인을 보고 나서, 바로 앞에서 그 여인을 칭찬하였다. 드디어 그 여인은 바로의 궁전으로 불려 들어갔다. 바로가 그 여인을 보고서, 아브람을 잘 대접하여 주었다. 아브람은 양 떼와 소 떼와 암나귀와 수나귀와 남녀 종과 낙타까지 얻었다. 그러나 주님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안에 무서운 재앙을 내리셨으므로,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꾸짖었다. "어찌하여 너는 나를 이렇게 대하느냐? 저 여인이 너의 아내라고, 왜 일찍 말하지 않았느냐? 어찌하여 너는 저 여인이 네 누이라고 해서 나를 속이고, 내가 저 여인을 아내로 데려오게 하였느냐? 자, 네 아내가 여기 있다. 데리고 나가거라." 그런 다음에 바로는 그의 신하들에게 명하여, 아브람이 모든 재산을 거두어서 그 아내와 함께 나라 밖으로 나가게 하였다.)
현재 전 세계에 퍼져있는 기독교는 이스라엘 민족신(여호와)을 섬기는 종교이다.
그런 이유로 여호와신의 언행에 항거하는 훌륭한 학자들과 인물들이 기독교를 기피하고 무시하는 무신론자가 되었지만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깨달았다면 그들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길을 걸었으리라 생각한다.
오늘날 기독교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땅속에 묻어 놓고 그들이 주장하는 교리의 상징으로만 이용하고 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갈보리 산에 가실 때 십자가 밑에 계셨고, 그는 십자가위에서 돌아 가셨지만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에게로 돌아 가실 때에 사명을 완수 하고 아버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셨다.
만일 기독교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땅에 묻지 않고 세상에 드러냈다면 역사에 많은 훌륭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공부하고 예수님을 알아서 진리의 길을 걸어 갔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생각을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사명은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님을 통해 그를 보내주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예수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는 것이다.
이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신은 죽었다”, “신은 없다.”라고 주장을 하고 인류사에 많은 공헌을 한 사람들 중에 무신론자가 많은 것은 기독교의 무능이자 책임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면 예수님과 그를 보내주신 하나님을 세상에 알려서 한 마리도 잃어버린 양이 없도록 힘쓰는 일이 우리의 사명이다.
백천(白泉) 김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