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빌립이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좋겠습니다."
0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네가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자기의 일을 하신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내가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주겠다. 이것은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다.
14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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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절은 가롯유다를 내 보내신 후 제자들을 향해 중요한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기 어려웠던 빌립이 예수님에게 청하기를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안에 아버지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빌립에게 “네가 듣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네가 보고 있는 나는 바로 아버지를 본 것인데 왜 그런 요구를 하느냐?”고 반문 하셨다.
11절. 만약에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내가 행하는 그 일을 보고 믿으라고 말씀 하셨는데 행하는 그 일이란 예수님께서 하신 일 즉 표징(Evidence of Miracle)을 포함한 역사(役事)를 뜻한다.
이 말씀은 현재 기독교인들에게 매우 적절하며 중요한 말씀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거나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그 당시 사람들에게 보여준 표징과 역사(役事)를 통해서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지금 교회에서는 신앙의 출발을 믿음으로 말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 된 출발이며 예수가 공생애를 통하여 보여준 표징이나 역사를 통해 증거를 근거로 하여 출발해야 한다.
11절과 12절의 말씀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과 같은 일을 할 것이고 예수님 보다 더 큰일을 할 것인데 그것은 자신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고 말씀 하셨다.
예를 들자면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그 표적보다 더 일을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말씀은 마태17:20과 같은 말씀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깨닫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너희는 내가 행한 일보다 더 큰 일들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약속이 우리에게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양상이 개인적으로나 시대적으로나 다를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 공생애 동안 우리에게 말씀으로 가르쳐 주시고 더불어 몸소 보여주신 그 일을 행하심(役事)을 본받아 우리 삶속에서도 “예수님의 행하심”을실천할 때 그 약속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마태17:20(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의 믿음이 적기 때문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가라!' 하면 그대로 될 것이요, 너희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지난주 요한복음 강해시간에 언급한바와 같이 이세상에서 인류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운 과학자, 철학자, 사상가들 중에서 왜 무신론자가 많은지 의문을 가지기 바란다.
오늘날 카톨릭교회나 기독교교회에서 믿는 신은 이스라엘 민족신 여호와이다.
그런데 왜 역사상 훌륭한 분들이 왜 이스라엘 민족신인 여호와를 믿지 않았을까?
독일의 저명한 구약학자인 율리우스 벨하우젠(Julius Wellhausen)은 모세오경을 신학교에서 가르친 학자인데 여호와가 모세에게 내려준 모세오경의 저자는 오경 각기 저자가 다른 복수의 저자들이 기록했다고 주장했고 구약의 성서적인 전승이 역사적인 것이 아니라고 비평했다.
오늘날 일반교회에서는 사람들이 이스라엘 신을 믿지 않아서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 이 말은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무지의 결과이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 하신 것 처럼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라는 말씀을 누군가 입증 했더라면 역사적으로 훌륭했던 무신론자들을 모두 예수님께로 인도하고 구원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세상에는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무신론자와 “신에 대해서는 알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불신론자 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이 마음속에 새겨야 할 예수님의 말씀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씀이다.
13~14절은 우리들의 인지 능력으로는 이해 하기가 어려운 내용이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어떤 계획이나 약속이 있었는지 성경에 그 기록이 없어서 그 어떤 설명이나 가정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고 예수님을 아는 자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예수님이 행 하신 일을 할 수가 있고 예수님보다 더 큰일도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인간이 살고 있는 세상은 과학적으로 판단하거나 성경의 말세적인 징조에 대한 기록으로 보거나 말세로 가고 있고 인류는 머지않은 장래에 자멸 할 수 밖에 없다.
그때가 언제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지만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여러분, 각자가 나의 생명이 오늘까지라고 가정해 보기 바란다.
그러면 우리의 심정은 한 순간도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 각자가 현재 살고 있는 삶 속에서 항상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되고 예수님이 행하신 그 일을 나도 할 수 있는지, 더 큰 일은 무엇인지 살피고 실천하는 생활이 되기를 바란다.
백천(白泉) 김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