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교회
 
작성일 : 18-03-05 09:36
설교제목 : 요한복음강해(15:09~17)
 설교일자 : 1980.05.25
 KEY WORD : @ 아버지 사랑 계명 친구 목숨
 성경구절 : 요15:09~17
 관련구절 :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058  

0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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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0절, 여기서 ‘지키면’이라 말은 ‘보존한다’, 수호한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너희들이 아버지의 계명을 보존하거나 실행한다면 나의 사랑(仁愛) 안에 머물게 된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계명은 새 계명으로 요한복음13:34~35절에 대한 강해 시간에 13개 항목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들이 이 계명을 보존하고 실천 함으로서 결실이 생기는데 그 결실은 아래와 같다.

-첫째 : 계명을 실천 함으로서 본질적으로 성도들이 사랑(仁愛) 하게 된다.

-둘째 :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유기체를 형성하게 된다. 예수는 참포도나무요 우리는 그의 가지가 되어 생명체를 이룬다.

-셋째 : 우리는 열매를 맺는다.

넷째 :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

다섯째 : 계명을 지킴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13절, ‘목숨’은 희랍 원어로 “프쉬케(ψυχή)”이며 영혼, 목숨, 생명이라는 뜻이 있으며 철학적으로 자아, 자기의 실존을 뜻한다.

‘버리면’의 희랍 원어는 “티데미(τίθημι)”로서 ‘놓다’ ,‘두다’, ‘지정하다’의 뜻이 있다.

따라서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라고 번역 한 것은 잘못된 번역 입니다.

‘친구를 살리거나 인도하기 위하여 자기의 존재(생명)을 거치(据置) 혹은 저당(抵當)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회수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신자들이 서로 사랑(仁愛) 자기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자기 존재가 없으면 사랑(仁愛)은 없는 것이다.

서로 사랑(仁愛) 하라는 말씀은 나도 잇고 친구도 있는 상태에서 사랑(仁愛) 하라는 말씀이다.

‘친구’라는 말은 희랍 원어로 “휠로스(φίλος,)” 로서  명사의 뜻은 친구 또는 friend이지만 형용사로 '사랑하는 ,친애하는'의 뜻이 있어서 여기서는 '사랑하는 사람'으로 번역함이 좋다. 

그러므로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자기존재(생명)를 거치(据置)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라고 해석함이 좋을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현실적으로 실용성이 없는 말씀은 하지 않으시고 우리들에게 항상 실행할 수 있는 말씀을 하신 것을 알 수 있다.



14~15절, 이 말씀은 우리가 계명을 보존하고 실천하면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하는 사람(친구)이 된다는 말씀이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지만 사랑하는 사람(친구)은 예수님이 행하는 일을 안다, 

예수님이 아버지에게 들은 것을 우리에게 알게 가르쳐 주었다(Declare:선포하다)는 말씀은 주인의 하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친구)이 알게 함이라는 뜻이다.



16절, 이 절에서 ‘세웠나니’는 13절에 ‘목숨을 버리면’에서 ‘버리면’으로 번역한 원어의 ‘티데미(τίθημι)'와 동일 단어이다.

따라서 “너희를 택하여 앞으로 나아가 더욱 성장해서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이라“란 뜻이다. 

과실이 '항상 있게에서'의 ‘있게’는 원어로 '메노(μένω)'로서 ‘머무르다’, ‘체재하다’, ‘존재하다’, ‘남아있다’란 뜻으로 영어로 Remain이다. 

이전 요한14:13절 강해 시간에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너희에게 다 이루어 주겠다” 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강조해서 하시는 말씀으로 열매가 없으면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내 계명을 지키고 나의 아버지께 나의 이름으로 구하면' 다 이루어 주겠다는 말씀이다.

성도로서의 열매가 남아 있으면 자기 신념 가운데 기도로서 예수님께 구하면 기도가 이루어질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지구상에 수많은 사람이 헤아릴 수 없는 기도를 하지만 열매가 없기 때문에 그들의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음을 일 수 있다.

기도가 이루어 지지 않으며 이 공간에 울리는 의미 없는 울림일 뿐이다.

기도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의 특권으로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를 연결해 주는 중요한 수단이다.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기독교가 역사적으로 인류에게 공익보다는 공해를 준 것이 더 많다고 생각 한다.

역사적으로 십자군 전쟁이 그러했고 자본주의나 개인주의가 발달한 것도 기독교의 영향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기독교 단체들이 오지에 병원을 짓고 교육사업을 하면서 문맹을 깨우친 것도 있지만 공해가 더 많았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기독교의 사명은 그 핵심적인 정신을 바꾸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핵심적인 가르침을 비유로 말씀을 많이 하셨다.

이 비유를 해석하고 깨닫는 데는 신(영적 존재)의 개념과 성경의 정확한 해석과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들에게 주어진 그 의무와 관념도 달라져야 된다.

옛날 사람들이 ‘태양과 달이 지구를 돈다.’는 지구중심설(地球中心說)을 믿은 것은 성경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면”에서 이름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이름과 그 의미가 다르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름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이 이름 안에는 ‘본질’이란 뜻이 있다.

따라서 예수님의 본질 안에서 기도로 구하라는 뜻이다.



옛날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잘 이해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민족 신인 여호와를 어떻게 하면 잘 섬기는가 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 이었기 때문이다.

그들 율법의 핵심인 ‘십계명’을 절대적인 계명으로 알고 이것을 지키면 여호와 신을 잘 섬기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따르는 신도가 되는가 하면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에게 내려 준 그 새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요한 6:28절에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가 예수님께 물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하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라고 대답하셨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고 신뢰 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관념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신뢰한다고 해도 예수님의 계명을 안 지키면 하나님의 일을 알 수가 없고 열매도 맺지 못하는 것이 돼서 예수님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것이다.

옛날 유대인 사회에서는 십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罪가 되었고 사형까지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요한6:28~29(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罪란 어떠한 것일까?

요한16:9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라고 하셨는데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신뢰 하지 않고 알지 못 함을 죄라고 하셨다.

죄란 말은 희랍원어로 ‘하마르티아(ἁμαρτία)'로서 '지식(영적)의 결함’, ‘실수로 인해 표적을 놓치다‘란 의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罪에 대한 정의는 '연약,사고(Accident)’, ‘불완전한 지식 때문에 미덕(Virtue)에 이르지 못하는 것‘으로 정의 하고 있다.

구약에서의 罪의 근원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완전하게 창조 하였으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음으로 선악(善惡)에 대한 지식이 형성되고 罪가 생겨서 에덴동산에서 쫓겨 난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하신 죄의 개념은 ‘영적 지식의 아둔함’ 혹은 ‘無識 때문에 영적으로 침체되고 성장하지 못한 그 상태’를 말한다.

예수님께서 ”천국은 어린아이들과 같은 자의 것“ 이란 말씀은 어린아이는 無識 하지만 지식이 성장되기 위하여 끊임없이 알려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 앞에서는 이 ‘영적 무식(無識)’이 죄가 되지 않지만 이를 변화 시키기 위한 노력이 없는 것이 죄가 된다.

이 ‘영적 무식(無識)’을 탈피하고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단 1분 1초도 시간을 아끼는 노력을 해야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영적 지식이 아둔한 무능한 상태로 침체되어 있고 성장을 못하는 그 무능한 상태를 罪라고 할 수 있다.


요한16:8~10(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창2:16~17(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사람은 출생과 동시에 생존권을 갖게 되며 대외적으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 상대적인 관계는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에게 젖을 먹고 독립할 때까지 식생활뿐만 아니라 교육을 받는 것까지 도움을 받는데 이 도움은 당연한 것 같지만 다 빚이고 부모와 나 사이에는 부채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서도 이 부채관계가 성립 되는 것인데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진 그 빚을 갚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 빛을 갚지 못하고 죽는다고 하면 이것도 죄가 된다 .

 


이 세상은 사탄이 개입하여 어리석은 인간들을 뒤에서 조정하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때까지 이 세상을 유지하고 보존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다.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이 세상에 보탬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 

보탬을 주기 위해서 우리는 영적으로 무능함을 개선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해야 되는 것이다.

이 세상을 떠날 때 절대로 이 세상에 빚을 지지 않고 도움을 남겨 놓고 떠나야 한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준 새 계명을 지키지 않을 때 우리의 삶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고 영적 지식이 성장을 하지 못하면 우리의 사명을 책임지지 못하는 자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 빚을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새 계명을 지킴으로써 우리에게 내려진 그 사명을 완수하게 되고 하나님께 진 그 빚을 갚는 것이 되는 것이다.

13절의 말씀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친구)을 위해 자기 존재(생명)마저 저당 잡혀야 하나님께 빚을 갚을 수 있을 만큼의 큰 사랑이 된다는 것이다.


백천(白泉)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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