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교회
 
작성일 : 18-03-21 16:10
설교제목 : 요한복음강해(16:29~33)
 설교일자 : 1980.06.15
 KEY WORD : @@진리 성령 장래
 성경구절 : 요16:29~33
 관련구절 :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562  

29 그의 제자들이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제 밝히어 말씀하여 주시고, 비유로 말씀하지 않으시니,

30 이제야 우리는, 선생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다는 것과, 누가 선생님께 물어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환히 알려 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것을 믿습니다."

31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32 보아라,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 두고, 제각기 자기 집으로 흩어져 갈 때가 올 것이다. 그 때가 벌써 왔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33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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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6:33절로서 예수님 교훈의 절정은 끝난다.

17장부터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아버님께 드리는 간절한 기도이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기록으로 우리에게 남겨 준 그 말씀은 몇 마디 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그의 행적과 우리에게 알려 준 말씀이 모두 전달되어 있지 않지만 부분이나마 기록으로서 전달된 그 말씀은 진리로서 구원의 원리를 확실히 파악 할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입으로 나온 말씀과 그 자신이 손수 행한 일로서 진리에 대한 핵심 원리가 확실히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파악해야 한다.

그 이외의 성경 구절은 다 관계문서 (Relation Document)이다.

예수님의 말씀과 타 성경 구절을 혼합해 버리면 그 원리를 제대로 깨달을 수 없다.

다시 말하면 구원의 길로 들어갈 수가 없게 된다.

진주와 모래를 같이 섞으면 구분이 되지 않기 때문에 진주를 찾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일부 기독교 단체가 본연의 의무를 하지 못하고 샤마니즘화 된 단체가 되어 있는 것은 바로 주님의 말씀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하는데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29~30절:  이 구절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지막에 하는 말이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라고 했는데, 이 제자들의 말은 예수님의 심오한 그 교훈을 깨달아서 한 말이 아니라 제자들이 생각하기에는 본인 자신들이 예수님의 심오한 그 교훈의 근원을 아는 것 같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의 말이 본인들이 깨달아서 안다고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31~32절, 나를 혼자 버려두고 각자가 자기 처소로 갈 때가 오고 있으며 지금 오고 있다는 진행형이다.

이 구절을 문자로만 보지 말고 그 당시 장면을 연상해 보기 바란다.

몇 해 동안 예수님께서 데리고 다니면서 천국의 말씀을 하셨기에 예수님의 교훈을 직접 듣고 또한 대중들에게 오랫동안 복음을 전파한 것을 목격하고 예수님과 숙식도 같이 하면서 병자들에게 병도 고쳐주고 죽은 자를 살리는 것도 직접 눈으로 본 그 제자들, 그들은 “죽으면 죽었지 예수님을 부인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라고 마태26장에 기록 된 바와 같이, 베드로와 다른 모든 제자들이 맹세까지 했다. 

그 제자들이 ‘지금은 우리에게 비유로 말씀 하시지 않아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명확히 압니다.’ 라고 한 제자들, 예수님과 생사고락을 같이하기로 한 제자들이 자기 생명은 살리겠다고 다 달아나 버릴 것을 예수님께서는 아신 것이다.

특히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서는 맹세를 했지만 대제사장 여종이 “이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사람”이라고 할 때” 베드로는 “나는 그런 사람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 한 것이었다.

이 구절은 복음서에 다 기록되어 있고 특히 마가복음 14장에는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한다”라고 기록 되어 있다.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가 저주하며 부인했다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그 당시 예수님의 마음을 상상해 보기 바란다.


마태26:33~35(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비록 모든 사람이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절대로 버리지 않겠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오늘 밤에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을지라도, 절대로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도 모두 그렇게 말하였다.)


마가14:69~72(그 하녀가 그를 보고서, 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말하였다. "이 사람은 그들과 한패입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부인하였다. 조금 뒤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갈릴리 사람이니까 틀림없이 그들과 한패일 거요." 그러나 베드로는 저주하고 맹세하여 말하였다.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그러자 곧 닭이 두 번째 울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께서 자기에게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그 말씀이 생각나서, 엎드려서 울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선택할 때 이 세상에서 비겁하고 자질이 부족한 사람들을 잘못 선택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그 때 당시에 예수님이 선택한 제자들은 예수님의 기준에 부합한 비교적 괜찮은 사람들을 선택하신 것이다 .

이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포함해서 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믿는 척하고 하고 있지만 막상 극한적인 경우에 도달하면 사람이란 타고 난 본색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 언제나 자아를 반성해 보아야 한다.

‘과연 나는 어떤 부류에 속한 사람인가?’를 항상 성찰해 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자기를 부인하는 것을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시 태어나지 않은 인간이란(중생하지 않은 사람) 다 마찬가지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속성을 고치고 다시 태어나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옳은 것은 옳다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된다.

그 이면에는 옳은 것을 판단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천국에 갈 수 있는 자녀란 이와 같은 판단 능력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옳은 것을 옳다고 인식하지 못하면 희망이 없고 천국에는 합당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이다.



33절 이 말씀은 그대들이 이 세상에서는 고통을 당하나 오히려 용단하라, 용기를 가지라는 뜻이다.

‘담대해라’는 희랍원어로 ‘달세오(θαρσέω)로 ‘용기를 가지다’란 뜻이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에서는 고통을 당하나 용기를 가지고 용단을 내리고 담대해라”는 뜻이다



주님께서 믿어 주시는 사람이라 하는 것은 신념을 가지고 수행 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우리는 주위에 소위 이름 있는 학자 중에서 좋은 글로 쓴다든지 말을 하면서도 실제 생활이나 행동에 있어서는 180도 다른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신자가 될 수가 없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해 주시기를 “오리를 가자거든 십리를 가라” 이 표현에는 심오한 원리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5장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해 주시기를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라”  우리는 오리를 가자는 사람에게 십리를 갈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이 말은 갈 수 없는 사람이 억지로 목을 끌고 십리를 가란 말이 아닙니다.

갈 수 있는 사람이 되란 말이다.

또한 가야 할 이유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갈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가 되는 것이다.


마태5:38~45("'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라' 하고 말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아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 너를 걸어 고소하여 네 속옷을 가지려는 사람에게는, 겉옷까지도 내주어라. 누가 너더러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 주어라. 네게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네게 꾸려고 하는 사람을 물리치지 말아라."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여라' 하고 말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만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



이 말씀 속에는 말로서 표현 할 수 없는 깊은 원리가 들어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6:26절, 마가 8:36절에 의거 “사림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라고 말씀 하셨다.

예수님의 궁극적인 원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기자신이다.

우주보다도 자기 자신이 더 중요하다.

자기가 없다면 하나님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살아야 하고 존재해야 된다.

이 두 말씀이 조합이 되고 하모니(harmony)가 이루어져야 구원의 원리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말씀은 주님의 말씀 이외의 이 세상 철학이나 가르침이나 문서에도 기록되어 있지를 않다.

우리는 이와 같은 실천 의지, 소신대로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16: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또 사람이 제 목숨을 되찾는 대가로 무엇을 내놓겠느냐?)

마가8:36(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오늘 말씀은 이제 몇 시간 내에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되고 떠나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택한 제자들이 예수님을 뒤로하고 각기 자기 처소로 흩어졌으나 이제 지금의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다시 태어나서 주님을 위하여 생명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우리로서의 변화해 가는 것이 주님을 따르는 신자의 주요한 생활 원리인 것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새 사람으로 변천하고 예수님께서 인도하는 길을 걸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기로 약속하신 그 성령의 힘으로 변해야 하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사람이 달라질 때 퍼스날리티(Personality), 즉 인격의 변화가 오는 것이다.

이 변화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의 기독교가 그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요한 16장을 통해서 2000년 전에 하신 말씀은 제자들에게 해준 말씀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알려주신 말씀이라고 확실히 명심해야 될 것이다.

우리가 용단을 내리고 용기를 내서 담대히 일어설 때를 가르치신 것이다.

한 반도는 작은 땅 덩어리지마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 원리(True Principle)인 그 진리를 파악해서 여기로부터 전 세계를 향한 많은 사람들의 눈을 깨우쳐줄 때가 온 것이다.



백천(白泉)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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