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교회
 
작성일 : 18-06-19 08:46
설교제목 : 요한복음강해(18:12~18)
 설교일자 : 1980.08.03
 KEY WORD : @@ 예수 결박 안나스 가야바 베드로
 성경구절 : 요18:12~18
 관련구절 : 마26:57~58, 막14:53~54, 눅22:54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759  


12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13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14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러라

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16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는지라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니

17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18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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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절: 제사장의 직분은 다윗의 자손으로서 출애굽기 28: 1~3절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레위 지파, 아론의 후손이 맡게 되어 있었으나 유대 역사의 기록을 보면 제사장이 아닌 사람도 제사장의 일을 행한 기록이 있다.

제사장의 근본적인 직분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에 잡혀 갔다가 돌아온 이후에 제사장 직분이 확고히 정립된 것으로 추정할 수가 있다.

제사장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코헨(kohen)'이며 제식을 행하는 자의 뜻이다.

민간의 우두머리 통치자의 위치를 지닌 사람으로서 제사장 직분은 제사의 직분보다는 신의 말을 전하는 신탁(神託)이 주 직분이다.


출28:1~3("너는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너의 형 아론과 그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불러내서, 나를 섬기는 제사장 일을 맡겨라. 너는 너의 형 아론이 입을, 영화롭고 아름답게 보이는 거룩한 예복을 만들어라. 내가 슬기로운 생각으로 가득 채워 준 모든 재주 있는 사람을 불러다가, 나를 섬길 아론이 제사장이 되어서 입을 예복을 만들라고 하여라.)



여기서 안나스 (Annas)는 AD 6,7년 경에 수리아의 로마 총독 '퀴리니우스'에 의해 대제사장으로 임명되었고 AD15년에 로마가 정해준 관할권을 넘어선 이유로 유대 총독 ‘발레리우스 그라투스’에 의해 해임 된다.

또한 가야바를 AD15년에 대제사장에 임명한 것도 ‘발레리우스’총독 이다.

이것은 AD 60년부터는 제사장을 로마 정부가 임명하게 되어 있었다.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결박하여 대제사장인 가야바에 직접 가지 않고 먼저 예수님을 안나스에 끌고 갈 때 안나스는 대제사장이 아니었다.  

그는 원로로서 유대 민족 사회에서 하나의 지도자 혹은 통치자 역할을 하며 실권을 지녔다고 추정할 수가 있다. 

그를 임명한 것은 로마 정부가 파견한 수리아 총독이었고 실제로 배후에는 정치적 힘이 작용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3-6절에 보면 베드로를 잡아서 가둘 때에도 안나스는 대제사장으로 실질적인 통치자로서의 실권을 행사한 것이다.

대제사장의 임명을 종교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마는 그 배후에는 정치적 힘이 작용한 것을 볼 수가 있다.

이와 같이 로마총독으로부터 대제사장직을 임명을 받아야 하는 것은 유대인으로서는 수치스러운 일이었을 것으로 생각 된다.


사도행전4:3~6( 사도들을 붙잡았으나,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다음 날까지 가두어 두었다. 그런데 사도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서 믿는 사람이 많으니, 남자 어른의 수가 약 오천 명이나 되었다. 이튿날 유대의 지도자들과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대제사장 안나스를 비롯해서,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그 밖에 대제사장의 가문에 속한 사람들이 모두 참석하였다.)



14절, 안나스는 예수님을 결박한 채 본인의 사위인 대제사장인 가야바에게 데려 갔다.

“예수가 죽은지 4일이 되는 나사로를 살리는 기적을 행한 후에 많은 유대인이 예수를 믿고 따르는데 그대로 두면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믿을 것이고 또한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면 우리는 못 살게 되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하고 물을 때 가야바가 대답하기를 “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지 않느냐” 라고 말했다고 되어 있다.

이 세상 일부 신학자는 “한 사람이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라고 주장하며,

따라서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는 대제사장 직분으로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그와 같이 말을 했다고 해석 하고 있다.

지성소에는 대제사장 밖에 들어 갈 수 없다.

한 사람이 백성의 죄를 위해 속죄 받게 하는 일도 대제사장 밖에 할 수 없다.



그 당시의 상황을 판단해 보면 이스라엘은 로마의 통치권 아래 있었으나 로마정부는 유대사람들에게 자치제를 허용 했다.

따라서 재판이라든지 민간사회 운영, 종교 생활은 자유롭게 자치제 하에 허용 되고 있었다.

단지 로마에 세금만 바치면 되게 되어 있었다.

유대인 지도자인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유대의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재래의 유대 종교 습관을 전혀 지키지 않은 예수가 표징을 행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자 예수를 그대로 두면 로마 정부가 우리의 권한을 빼앗고 이 백성을 노예취급을 할까 두렵고 염려되어 공회를 열고 죽이기로 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죽이기로 하고 모의를 한 후에 "이 자를 죽이는 것이 우리 백성에게는 유익하다." 라고 말 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죽일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을 죽이는 것은 그 배후에 그를 조종하는 신이 그를 죽이도록 조종했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이 그렇게 된것이다 .



16~17,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는 요한으로 추정 된다.

그는 안나스와 가야바도 알아서 그 뜰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베드로가 들어갈 수가 없어서 요한이 대문 밖에 서 있는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 간 것이다.

이 때는 3월 말에서 4월초 경이다.

이스라엘기후는 우리나라 기후와 비슷한데 새벽녘에 추워서 뜰에 불을 피워 쬐고 있었던 것이다.

대제사장의 여종이 베드로에게 “당신도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 아니냐?”하고 말하자 베드로가 부인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건은 마태26:69~75절, 마가14:66~72절, 누가22;54~62절에 기록되어 있다.

이 여종은 베드로에게 당신도 이 사람을 따라다니던 무리의 한 사람이고 그의 도당이라고 말했다. 

베드로는 바로 몇 시간 전에 예수님께서 “내가 가는 곳을 너희는 올 수 없다” 할 때 “주님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나이다”라면서 본인의 의지를 표명하고 예수님을 결박하러 동산에 군대와 대제사장과 바리새인이 왔을 때 베드로는 칼을 빼서 대제사장 종의 귀를 베었는데 예수님께서 예시 한 대로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한 것이었다.

특히 마가 14장에서는 베드로는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한다."라고 말 한 것이다.

이 저주는 이 여종에게 한 것일 수 있으나 실제적으로는 예수님께 한 것이 되는 것이다.


마태26:69~75(베드로가 안뜰 바깥쪽에 앉아 있었는데, 한 하녀가 그에게 다가와서 말하였다. "당신도 저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다닌 사람이네요." 베드로는 여러 사람 앞에서 부인하였다.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서 베드로가 대문 있는 데로 나갔을 때에, 다른 하녀가 그를 보고, 거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다니던 사람입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맹세하고 다시 부인하였다.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조금 뒤에 거기에 서 있는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서 베드로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틀림없이 그들과 한패요. 당신의 말씨를 보니, 당신이 누군지 분명히 드러나오." 그 때에 베드로는 저주하며 맹세하여 말하였다.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그러자 곧 닭이 울었다.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 하신 예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바깥으로 나가서 몹시 울었다.)



카돌릭에서는 베드로를 교회의 기둥이며 예수님의 수제자라고 말한다.

이런 베드로가 왜 남자답게 “내가 바로 이 사람의 제자다.”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베드로가 생각하기에는  “설마 예수님께서 군대와 유대인들에 의해 끌려 않을 것이다”라고 자신하고 있던 차에 본인이 신변의 위험을 느끼자, 그는 예수님이 유대인의 고유종교의 율법과 계명을 지키지 않아서 붙들려 감을  목격하고 본인도 은연중에 두려움 속에 예수님을 부인 한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 한 기록을 읽으면서 일반적으로 베드로를 비겁한 사람으로 밖에 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도 똑같이 말했을 것이다. 

이 행동은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있을 수 없었던 일이지만 이 세상 일로서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성경 구절을 보면서 항상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

“나도 이런 류의 사람이 아닌가?”하고 반문 해 봐야 된다.

예수님을 열심히 믿고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 중에서 때와 장소와 현실 여건에 따라서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볼 수가 있다.



신앙이란 것은 근거 없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 신앙이라는 것은 종교심인데 이 종교심의 신앙은 미신하고 차이가 없다.

그리하여 나의 신앙은 종교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고 반성 해봐야 합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자신을 표현한 “나는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였듯이 세 가지 토대 위에 서있지 않으면 진정한 신앙이 될 수가 없다.

● 첫째: 예수님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있어야 된다.

● 둘째: 내 성향이 하나님 앞으로 갈 수 있는 성향이 있어야 한다.

● 셋째: 생활 속에서의 실천 및 체험이 지속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의 유명한 물리학자이면서 천문학자인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 했다가 로마 교황청에서 그를 로마에 감금하고 “지동설”을 철회할 것을 강요 받았었다.

지금도 그 당시 갈릴레오가 실험했던 경사탑이 있다.

그는 카톨릭 신자였지만 그의 학문에 대한 신앙은 확고했었다.

그는 가택에 구금되어 여생을 보냈지만 그의 양심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을 믿고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도 이와 같은 확고한 인식하에 서 있지 않으면 신앙이 될 수가 없다. 

베드로의 믿음은 이와 같은 토대 위에 있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는 방법은 세 단계가 있다.

● 첫째 단계: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접촉한다. 이 사자는 사람이 아니고 신이다.  사자인 신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형태로 접촉 했던 것이다

● 둘째 단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나신다. 첫째 단계를 지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서 자기 자신을 나타내셨다.

● 셋째 단계: 성령이다. 예수님께서 “내가 떠난 다음에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보혜사’를 보내겠다“고 말씀하시고 이 성령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이다.



마태 12:25~32절에 보면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되 성령을 거역하면 사함을 받지 못한다.” 는 구절이 있다.

이 말은 보통으로 생각하면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 성령이란 말은 구약에 약간 나온다. (Sprit of God) 

구약에서의 성령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 주시겠다는 성령과는 틀리다.

다시 말하면, 이 구약에서 말하는 성령은 이 땅 위에 온 적이 없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하나님 앞으로 가기 전에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이 성령을 거역하면 왜 용서함을 받지 못하냐 하면 이 성령은 하나님의 본연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본연의 형태가 우리에게 나타나시고 접촉을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인자로 사람의 형태로 왔기 때문에 인간의 장막을 지니고 있어서 우리가 혹 거역했다고 하더라도 용서를 받을 수 있지마는 성령은 ”하나님의 본성, 하나님의 본연의 자세“ 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거역하면 용서를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예수님의 길을 걷는 자에게 이 성령의 나타남과 접촉이 없는 신자는 온전한 신자라고 볼 수 없다.


마태12:25~32(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지면 망하고, 어느 도시나 가정도 서로 갈라지면 버티지 못한다.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갈라진 것이다. 그러면 그 나라가 어떻게 서 있겠느냐? 내가 바알세불의 힘을 빌어서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므로 그들이야말로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에게 왔다. 사람이 먼저 힘 센 사람을 묶어 놓지 않고서, 어떻게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세간을 털어 갈 수 있느냐?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어 갈 수 있다.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않는 사람은 헤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무슨 죄를 짓든지, 무슨 신성 모독적인 말을 하든지, 그들은 용서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다. 또 누구든지 인자를 거슬러 말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겠으나,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도 오는 세상에서도,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4 복음서의 기록이 다 같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 부활’을 부인 하는 세계적 학자들도 있다.

네 복음서에서 저자에 따라 그 기록이 같지 않은 것은 각 저자의 독자층이 다르고 저자의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기록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 속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추려서 연구해 보면 연구할수록, 깊이 사색하면 사색할수록 수학의 증명보다도 더 확고한 것이 예수님의 말씀이다.



이 세상은 점점 험악한 상태로 접어들고 있으며 이 세상에 있는 현재의 일부 교회들은 그 근본 역활을 하지 못하고 믿을 수 없는 단체가 돼 버린 것이 현실이다.

예수님을 잡아 죽인 그 신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도록 여러 종교 형태로 방해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오늘날 전세계에서 가야바에게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이 백성을 위하여 유리하지 않냐” 라는 말을 하게 한 이 신은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한 그 신이며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종교인을 조정해서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을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

따라서 우리 신자들은 이 세상일을 볼 때에는 언제나 상식적으로, 세상의 기준으로 보고 인지하고 판단하지 말고 항상 성령이 시키는 신령한 눈으로 이 세상을 관찰 하는 것이 중요하다. 



백천(白泉)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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