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02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03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
04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05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06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07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08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09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부터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10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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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절 :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 하더라.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이 구절에서 옷은 원어로 “히마티온(ἱμάτιον)”으로 겉옷을 가리킨다.
3절 : 이 구절에서 ‘평안할지어다’로 번역된 원어는 카이레 이며”그 원형인 “카이로(χαίρω)”의 명령형이다.
그 뜻은 “기뻐하다”,”즐거워하다” 이며 신하들이 왕에게 대한 문안 인사말로 사용됐다.
영어성경에는'Hail, king of Jews!'로 번역되었고, 여기서는 '왕에 대한 만세'라는 의미이다.
뒤이어 예수님을 손으로 뺨을 때리더라. (They slapped him in the face -NIV) (they smote him with their hands.-KJV)
4절 : 여기서 죄라고 번역한 원어 “아이티아(αἰτία)”는 혐의, 원인, 이유의 뜻이 있고 법정 용어로 사용할 때 “죄”가 적용되나 본문에서는 혐의로 해석함이 적절하다.
5-6절 : 십자가의 원어는 명사로서 “스타우로스(σταυρός)” 이며 이 '스타우로스'의 원 의미는 나무형틀, 막대기 혹은 곧은 말뚝으로 시골에 가면 울타리를 만들기 위해 나무말뚝을 땅에 박는 나무 말뚝을 가리키며, 기독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십자가는 잘못된 번역이다.
그러면 왜 십자가란 말이 생겼는가 하면 '스타우로스'란 말이 라틴말로 ‘crux’ (크룩스)이기 때문이다.
이 말이 영어 성경에 Cross로 번역되었고, 한글로 '십자가'가 된 것이다.
나무형틀의 기원은 기원전 고대 페르시아에서 죄수를 처형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 됐던 것으로 추정되며, 로마 시대에는 범법자들의 사형 집행에 사용되었으며 십자가 처형을 위해서 엉덩이를 받치고 손을 올려 양쪽에 묶고 못 박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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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십자가의 형태의 상징물이 사용 된 것은 BC2000년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십자가는 하나의 부적으로서 사용되어 이 부적을 사람이 몸에 지니고 다니면 귀신을 쫓아내고 보호와 행운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생각한 종교적인 미신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원시 미신종교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 되었고, 자연숭배와 사람의 생식기와 연관된 성 의식과 관련한 여러 가지 형태의 상징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내가 연구했던 기록에는 BC750년 발굴된 왕의 무덤에서 돌로 만든 시체의 귀에 십자가가 달린 것이 발견 된 적도 있다고 한다.
이 십자가의 상징물은 4세기 로마황제 콘스탄티우스가 십자가를 그리스도교의 상징물로 채택 함으로서 사용되었고, 전 세계 기독교에 십자가 형상이 다양한 모양의 상징물이 되어 예수님이 달려 죽은 심벌로서 사용되고 있는 것은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시 한 번 강조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나무 형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이지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미신 종교에서 근원이 된 십자가를 카톨릭과 일반 대부분 교회들에서는 교회의 건물마다 십자가 상징물을 높이 세워놓고 이 십자가를 기독교의 상징물로 사용하는 것은 반성해봐야 될 일이다.
7절 :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번역하기보다는 신의 아들로 번역함이 적절하다.
이 구절의 의미는 유대인이 예수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가 나사렛에서 거주하는 목수의 아들이고, 그 어머니 형제들을 유대인들이 잘 알고 있는 집안의 아들이며, 또 분명히 사람의 아들 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유대인의 법에 의거 사형에 해당된다는 뜻이다.
9절 : 이전 강해 시간에 설명 드린 것같이 관정은 원어로 ‘프라이토리온(πραιτώριον)”으로 로마 사령관이 재판하던 장소이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너는 어디서 왔느냐" 하고 물을 때 예수께서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10-11절 : '나를 네게 넘겨준 자' 이것은 과거 시제이지만 넘겨주는 지금은 현재 진행형으로 봐야 된다.
이 구절에서 ‘넘겨준 자’는 단수이다.
성경은 간단히 읽어버리면 핵심적인 것을 간과할 수가 있다.
이 말에는 대단히 중요한 내용이 내포되어 있는데,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준 자들은 많은 사람들 이었다.
군중들, 장로들, 그 당시 원로인 제사장들 등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끌고 가서 비웃고 소리치며 “이 사람을 나무 형틀(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라” 라고 외쳤고, 타 복음서에 보면 군인들 및 군중들은 예수님을 희롱하고, 침을 뱉고, 머리를 치며, 관리들은 "네가 하나님이 택한 자면, 네 자신도 구하라." 라고 비웃고, "46년 걸려 완성된 성전을 사흘 만에 다시 짓겠다 하는 능력자가 어찌하여 나무형틀에 죽임을 당하느냐!"하는 조롱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 군중들을 크게 불쾌히 여기시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죄를 인정하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는 괴롭고, 고통스러워하는 종말의 자리인 나무형틀(십자가) 위에서까지 아버지께 고하여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다.” 라고 자신을 핍박한 자들을 위해 기도해주신 분이다.
평소에 예수님은 병자들을 고쳐주고, 힘들고 어려운 자들의 손을 잡아주고 구원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도록 가르치셨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따랐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나무형틀(십자가)에 목 박으라고 외친 자들을 생각할 때 ‘넘겨준 자들’에게 인간적으로 몹시 괘씸하고 불쾌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를 ‘넘겨준 자’는 제사장 한 사람이며 그 위(배후)에는 예수님을 죽이도록 넘겨준 신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예수님께서는 일반 군중의 행동을 문제시 하시지 않았던 것이다.
인간으로서는 예수님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예수님을 죽이도록 한 그 신은 예수님을 죽이도록 가야바를 배후에서 조정하여 그로 하여금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주도록 한 것이다.
이 신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왔을 때부터 독생자의 권한을 빼앗기 위하여 그를 광야에서 오랫동안 시험을 했고 그 시험에 실패하자 그 다음에는 갖은 방법과 수단으로 예수를 괴롭혀 왔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나무형틀에 매다는 그 목적을 달성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목적을 달성했지만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그 신의 계획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완전히 이 우주를 통솔하기 전까지는 그 신은 목적 달성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그 신은 전 세계 기독교 종교에 침입하여서 예수님을 알지 못하게 방해 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하고 형식적으로 예수님을 부르고 있지마는 진실로 '예수님이 누군가?' 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을 보고 있다.
믿음을 강조하면서 신도들에게 예수님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은 예수님을 모르게 하는 가증스러운 일이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진리를 경시하는 몇몇 기독교 교파가 실제로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는 성경 속에서 그 원리를 발견하고 그 원리 속에서 진리를 찾고 해석함이 중요하다.
인류의 근본 문제가 해결 되는 것은 예수님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그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그 원리는 과학의 원리요, 경제의 원리며, 철학의 원리며, 모든 이 세상 인간들이 알아야 할 기본 원칙인 것을 깨달아야 한다.
나는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제가 공부하는 이 학문도 예수 그리스도 원리 속에서 핵심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오늘 강해 한 내용에서 예수님을 넘겨준 그 군중들 속에는 예수님이 표적을 행할 때에 있었던 자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일 때에도 있던 자들, 병을 고침 받은 자들, 은총을 받은 자들도 포함되었을 수 있다.
예수님의 행적에 감화를 받은 그 자들도 군중이 선동하고 떠들면 그 무리 속에 포함되어 그 동안 알고 믿어왔던 예수님을 모른 체 하며 군중심리에 휩쓸려서 그들도 “예수를 나무형틀(십자가)에 처하라”고 외쳤을 것이다.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일반 대중입니다.
우리는 이 상황들을 성경에서 읽고 그 당시 상황을 재현해보면서 오늘 강해 구절을 자신의 거울로 삼아 일상생활 속에서 반성해봐야 될 것이다.
백천(白泉) 김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