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교회
 
작성일 : 18-10-11 08:29
설교제목 : 천국일원이 될수있는자들
 설교일자 : 1980.11.02
 KEY WORD : @ 팔복 심령 천국 땅 복
 성경구절 : 마05:01~12
 관련구절 : 눅06:20~23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801  


0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0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0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0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0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0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0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0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0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



오늘 이 말씀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의 자격, 다르게 표현하자면 천국의 일원(一員)이 될 수 있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이 마태복음에 있는 말씀은 복 있다 하는 소리가 여덟 번 겹쳐있다고 해서 ‘팔복’이라고도 하고, 또 학자들 가운데는 처음 복과 나중의 복을 합쳐서 ‘칠복’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요약을 하면, 이것은 팔복도 아니고 칠복도 아니요 하나의 복입니다.



먼저 마태복음의 기록과 누가복음의 기록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을 먼저 살펴보면
1. 심령이 가난한 자(마)/ 가난한 자(눅),
2. 의를 위해 주린 자(마)/주린 자(눅)
3. 슬피 우는 자는 위로 받을 것이요(마)/우는 자는 웃을 것이요(눅)
이렇게 되어 있고, 누가복음에는 나머지 말들은 빠져 있습니다.
참고해서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기독교 성경이 육십여 권, 혹은 배경에 관한 것까지 합하면 칠팔십 권이 되지만, 그 중에 가장 주요하다고 볼 수 있는 말씀이 오늘 이 말씀입니다.
그러면 원어에 적혀 있는대로 직역해보겠습니다.
첫째: 영이 가난한 자들이 행복하니 그 하늘들의 나라가 저들의 것이고
둘째: 슬피우는 자들이 행복하니 저들이 위로 받아질 것이고(‘부름을 받아질 것이고’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셋째: 겸손한(온유한) 자들이 행복하니 구역(區域)을 지금 받을 것이고 (서양 사람들의 번역이라든가 우리나라에서는 땅이라고 했지마는 원어의 뜻은 ‘육지의 한 부분’으로 구역(區域)으로 해석함이 적절합니다 )
넷째: 의(義)에 기갈(飢渴 ;배고프고 목마름 )하는 자들이 행복하니 저들이 충족하여질 것이고(의(義)에 기갈(飢渴)한다는 것은 의(義)에 배고프고 목이 말라서 아주 숨이 콱콱 막힌다 하는 그런 의미입니다.)
다섯째: 자비스러운 자들이 행복하니 저들이 자비를 받게 될 것이고
여섯째: 중심이 순결한 자들이 행복하니, 저들이 하나님(혹은 원어대로 말하면 그 신)을 볼 것이고
일곱째: 평화를 조성하는 자들이 행복하니 하나님의 아들의 칭호를 받을 것이고
여덟째: 정의(正義,Righteousness) 때문에 핍박받는 자들이 행복하니, 그 하늘들의 그 나라가 저들의 것이다.



저는 이 영어나 독일어나 혹은 불어 이런 정도의 각종 번역을 나름대로 구해서 읽어봅니다만, 대부분 새로 번역이 나올 때 마다 원어의 뜻과 다르게 번역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것이 나는 세계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소위 학자들이란 사람들이 오역(誤譯)을 함으로서 오늘날 기독교라 하는 것이 점점 제 구실을 못하고 또한 사회적으로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주요한 이유가 된다 그렇게 보는 것 입니다. 
이런 상태는 진짜 생명을 갈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곤란한 일입니다.
예수님이 두 사람 세 사람 네 사람 이렇게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듯 진리는 하나입니다.
예수님을 알자는 것이 목적인 이상, 성경은 예수님을 알기 위한 수단이며 성경 가운데서 예수님을 발견해 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발견 못한다고 하면,  성경의 근본 가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성경을 읽는 것은 성경 가운데는 하나님의 말씀 있어서, 즉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해서 우리가 이를 연구하고 공부하고 이 말씀을 상고 하는 것입니다.
또 이 말씀뿐만 아니라,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지금 예수님은 살아 계시니까,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면모를 항시 접촉할 수 있어야 된다. 그것입니다.
이 책이라 하는 것은 산 책과 죽은 책이 있습니다.
이 기록 성경 이것은 죽은 책입니다.
물론 죽은 책도 참고가 됩니다마는, 주요한 것은 산 기록 즉, 그리스도는 지금 살아계십니다.
분명히 살아 계시니까 살아있는 그분하고 언제나 우리는 교통(交通)할 수 있는 생활이라야 될 것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기독교는 지금 살아있는 그리스도와 교통이 안 되는 까닭에 죽은 책만 가지고 이 소리 저 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형편입니다.



오늘 이 마태복음에 쓰여 있는 이 여덟 가지는 그 자체에 해석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 여덟 가지로 나열한 것은 다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마디 말 하고는 또 거기 대한 해석을 해주신 것 입니다.
여기 영이 가난하다. 심령이 가난하다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그 아래에 가서 의를 위하여 기갈(飢渴)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의 (正義;Righteousness)를 위해서 항시 배고파서 못 견디고 마실 것을 찾아 애쓰는 것과 같이 갈증을 느끼는 사람, 다시 말하면 정의를 위해서 주리고 갈증을 느끼는 사람을 가리켜서 여기 가난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그 자체에 해결이 있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의 자격이라고 하는 것은 정의를 위해서 기갈(飢渴)을 느끼고, 고갈(苦渴)을 느끼고, 견디지 못해서 몸부림치는 사람, 이런 사람이 천국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것이고, 또한 그 천국이 그들의 소유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나 천국을 가는 것은 아닙니다.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표현했습니다만, 그러나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먼저 ‘법’입니다.
아무리 사람을 사랑하고 귀엽게 봐도 하나님께선 법을 어기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법은 진리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정의를 위해서 고갈을 느끼고, 굶어서 주린 사람과 같이, 허덕거리는 사람이라야만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면 다른 사람은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기 3절에서 '복이있다.' 혹은 ‘행복하다’는 형용사로서 원어로 ‘마카리오스 ‘( μακάριος)이며, '복된', '축복된', '행복한',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여기 ‘하늘들의’는 복수형(명사 소유격)으로 원어는 οὐρανῶν(우라논) 입니다.
이렇게 기록된 것은 마태가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늘의 의미를 재래의 유대 사상으로 이해하고 기록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예를들면, 창세기 1장1절의 하늘 역시 복수형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말한 셋째 하늘- 땅위의 하늘/ 그 위의 하늘/ 자신들의 신이 있다고 믿는 그 하늘-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보여집니다..



다음 4절에 보면, 「슬피우는 자들이 행복하니 저들이 위로 받아질 것이고」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애통하는 자가 위로를 받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면서 우리에게 주신 당연한 하나의 규례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 말입니다.



5절에 보면, 「겸손한(온유한) 자들이 행복하니 구역을 지금 받을 것이고」
대단히 이질적인 구절입니다.
이 구절은 시편37장11절(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있는 말이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구나 알고 반기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구역, 혹은 넓게 봐서 땅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여호와의 소유였습니다.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땅은 예수님과 상관이 없다 그것입니다.
그리고 한 부자 청년이 예수께 나아와 어떻게 하면 영생(행복한 생활을 오래 유지 하는 것을 의미)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네 마음이 온유하면(계명을 잘 지키면) 그 유산을 오래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부자 청년은 그런 것은 잘 지켰다 라고 말했고, 이 말에 대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그렇다면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다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부자청년에게 하신 말씀과 이 구절은 양립될 수 없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천국을 말씀 하시면서 땅에 대해 말씀을 하실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후대의 필사자에 의해 삽입이 되었다고 추정되며, 따라서 이 구절은 배제되어 읽는 것이 적절합니다  .    



다음 8절에 보면, 「중심이 순결한 자들이 행복하니 저들이 그 신을 볼 것이고」
이 구절에서 '순결한', 청결한' 이것을 원어대로 보면 καθαρός(‘카다로스)이고 속 내용이, 속이, 안이 '순결한', 청결한' 이란 의미 입니다.
이 사람이 외모는 어쨌든지 간에 속살은 먼지하나 없는, 티끌하나 없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볼 것이다’에 해당하는 원형은 ὁράω(‘호라오’)이며, 요한복음6장: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자 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의 ‘데오레오’(θεωρέω )단어의 ‘보다’와 같은 의미 입니다) 14장:7( 이제부터 너희가 그를(하나님을)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에 나와 있는 본다와 같은 말입니다.
영어로는 prospect, distinguish, perceive 정도의 뜻을 가지는데 한국어로는 ‘알아 본다’ 가 가장 적합한 말입니다.
많은 신들 가운데 예수의 아버지 신과 여호와 신을 구별하여 알아 본다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을 본다 하는 것은 천국의 소유자가 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9절로 가서,  「평화를 조성하는 자들이 행복하니 신의 아들의 칭호를 받을 것이고」
이스라엘 말에서 신자(神子) 즉 여호와의 아들이란 말은 인자(人子)에 대조되는 말로 보통 사람은 아니다 혹은 훌륭한 사람이다 라는 뜻으로 쓰이던 말입니다.
따라서 이 말의 의미는 평화를 가져오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다 라는 그런 의미입니다.
그러나 평화를 가져오려 많은 노력을 하는 이가 이 세상에서 있을 수는 있지만, 참 평화를 조성하는 사람은 오직 정의와 진리에 입각한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나는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참된 평화는 악신과 죄와 싸워 이겨 얻어지는 것입니다.



이어서 10절에 보면,  「정의 때문에 핍박 받는 자들이 행복하니 그 하늘들의 그 나라가 저들의 것이다」 여기서 이 의는 이 세상의 상대적 의가 아닌 철저히 진리에서 나오는 법에 따른 의를 
말합니다.



여기 칠복 중 절대적으로 천국에 관련된 조항은 단 둘 뿐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그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핍박을 받을 때 복이 있다는 11절의 말씀은 의를 위해 핍박받는다는 말씀 속에 들어 있는 것에 해당되므로 따로 볼 것이 아닙니다.



나머지 말들은 대단히 듣기 좋고 흐뭇한 말이다 그것입니다.
애통하는 자, 의를 위해 목마른 자, 자비한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평화를 조성하는 자 등은 복이 있다, 즉 바람직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댓가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천국의 시발점에 설 수는 있을지언정, 천국의 소유자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결국은 여덟 혹은 일곱이 있지만, 결국은 천국의 일원이 되는 조건은 하나 ‘진리에 대해 주리고 목마른 자’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인간의 소질적 측면(자비로운 사람, 중심이 순결한 자)과 활동적 측면(심령이 가난하다,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 정의 때문에 핍박을 받는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소질을 가진 사람이 활동적 측면을 더할 때 그리고 그 다음에 평화를 조성하는 사회적 영향력을 끼칠 때 비로소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사람이 최종적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끼치려 할 때 필연적으로 핍박을 받을 것이고 이것이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소질만 갖고는 천국을 소유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여기 여덟 가지를 쭉 내려읽어보면 믿음이란 말이 한 마디도 없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로서 확고히 인식해야 합니다.
오늘날 대부분 교회에서 믿음이라 하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히 말해 둡니다만, 덮어놓고 믿는다고 해서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 이것은 천국에 갈 수 있는 조건, 자격을 말해준 것입니다.
이것이 된 후에 신앙은 자동적으로 생기게 마련입니다.
신앙이란 것이 억지로 생기는 게 아닙니다.
억지로 생긴다 하면 그건 미신입니다.
미신과 그리스도가 요구하는 πιστός(피스토스) 즉 ‘참된 신앙’이라 하는 것은 180도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라 하는 것은 그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백천(白泉) 김준식

SDK


 
 

Total 462
번호 설교제목 설교일자 성경구절 글쓴이 조회
462 하나님의 선물 1994.03.27 요14:12~17 관리자 1590
461 요한복음강해 1980.10.05 요20:19~31 관리자 1034
460 성전보다 더 큰곳 1983.03.27 마12:01~08 관리자 2413
459 빛과 눈 1986.11.23 마06:22~23 관리자 2510
458 신자의 생활조건 1980.12.14 마07:07~12 관리자 2126
457 요한복음강해(15:16~27) 1980.06.01 요15:16~27 관리자 1858
456 씨의 의미 1989.04.02 마13:18~32, 13:36~42 관리자 1612
455 요한복음강해(20:11~18) 1980.09.28 요20:11~18 관리자 1932
454 요한복음강해(19:31~42) 1980.09.14 요19:31~42 관리자 1827
453 천국일원이 될수있는자들 1980.11.02 마05:01~12 관리자 1802
452 요한복음강해(19:12~22) 1980.08.31 요19:12~22 관리자 1676
451 요한복음강해(19:01~11) 1980.08.24 요19:01~11 관리자 1689
450 요한복음강해(18:28~40) 1980.08.17 요18:28~40 관리자 1832
449 요한복음강해(18:19~27) 1980.08.10 요18:19~27 관리자 1849
448 요한복음강해(18:12~18) 1980.08.03 요18:12~18 관리자 2289
 1  2  3  4  5  6  7  8  9  10    

교회소개 l 찾아오시는길 l 예배안내 l 개인정보취급방침 l 이메일무단수집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