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교회
 
작성일 : 18-12-05 11:16
설교제목 : 요한복음강해(20:11~18)
 설교일자 : 1980.09.28
 KEY WORD : @ 마리아 부활 랍오니 형제 아버지
 성경구절 : 요20:11~18
 관련구절 : 막16:09~11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931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12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



요한복음 20장부터는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사건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안식 후 첫날 막달라 마리아는 혼자서 무덤에 갔었는데 돌이 옮겨진 것을 목격한 후 이 사실을 베드로와 요한에게 알립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24장10절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그들과 함께한 다른 여자들이 무덤에 간  것으로 기록 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에 막달라 마리아가  혼자 무덤에 간 사건과 누가복음이 기록한 여자들이 찾아간 것은 다른 사건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특별히 예수님께서 일곱 귀신 들린 이 여인을 치료 해 주었다는 성경에 나오는 여인입니다.
그녀는 안식일이 지나가기를 기다려 아무도 몰래 혼자서 무덤에 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요한 20장 1절은 다른 마리아와 더불어 무덤에 다시 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마태 28장 1절/ 마가16장 1절)



11-12절: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였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마리아가 무덤에서 돌이 옮겨진 것을 보고 처소로 돌아간 후 베드로와 요한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다시 무덤으로 가서 무덤 안에 놓인 세마포와 머리를 쌌던 수건을 보고 울고 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체가 뉘었던 자리에서 흰옷 입은 두 천사( Two angel in white)를 봅니다.
그러나 마태 28장 5절에 의하면 한 천사(An angel of the Load)로 기록 되어 있고, 마가 16장 5절에는 흰 옷을 입은 한 청년 (a Youngman dressed in white), 누가 24장 4절에는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 ( Two men in clothes that gleamed like lightning)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기준으로 보면 막달라 마리아도 처음에 무덤에 왔을 때는 천사를 보지 못했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 후 엠마오에 갈 적에 중간에 순간적으로 나타나신 기록이 있습니다.
'천사'라는 것은 일종의 신적 존재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은 순간적입니다.
또는 안 나타날 수 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부활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육체의 형태가 아닙니다.
오늘 언급된 천사의 형태로 되는 것입니다.
각 복음서마다 이렇게 같은 사건들이 다르게 기록되어진 것이 성경에는 많이 나오지만 예수님의 진수의 진리 말씀을 기록한 요한복음이 예수님 말씀에 가깝고 마태복음은 그의 말씀이 비교적 많이 기록되어 있는 까닭에 우리에게 주요한 책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15-1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야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마리아가 누군가 주님의 시체를 가져간 것으로 알고 울 때 예수님께서 “누구를 찾느냐”할 때에는 예수님인 줄 몰랐다가 이후 몸이 돌이켜져서 보니 ‘마리아야’라고  부르는  사람이 예수님인 줄을 알았던 것입니다.
'랍오니'는 아람어 ‘랍보니’에서 유래한 단어로 '나의 주인,나의 선생님'이란 뜻입니다.



17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예수께서 나를 붙들지 말라.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신 것은 이 세상에 오시기 전의 예수님의 본연의 상태로 돌아가신다는 것입니다.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전하라 하신 말씀은 그 어감이 다시 만나지 않을 것처럼 묘사 되어 있으나 19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에게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고 도마에게 직접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어 못 자국을 확인케 하신 것은 하나님께 올라갔다 다시 오신 것으로 추정 할 수가 있습니다.



누가복음의 예수님의 부활 사건 기록은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여자들이 무덤에 향품을 가지고 가서 보니 돌이 무덤에서 옮겨 진 것을 보고 예수님의 시체가 보이지 않을 때 두 천사가 예수님의 부활을 알리고 열한 제자들에게도 알립니다.
그 이후에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엠마오’마을에서 예수님이 처음으로 두 사도에게 나타나시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제자들과 식사도 같이 하시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에서 승천한 것으로 부활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의 기록이 왜 이렇게 요한의 기록과 일치하지 않는가 하면, 다시말하면 요한복음에는 기록된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나를 붙들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후 아버지께 올라갔다가 온 것을 그대로 기록하지 못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복음서 특징상 역사적인 상황을 정확히 기록하려는 것보다는 복음 즉, 기쁜 소식을 전하고저 하는 것이 주관심사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승천 상황을 누가가 기록한 예수님의 승천 상황을 보면 짐작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글을 보면 부할 하신 후에 똑같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내용을 누가복음에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음식도 같이 드시고 베다니 앞에서 승천하신 것으로 기록 되어 있지만, 사도행전 1장 3절을 보면 부활 하신 후에 40일 동안 세상에 계시면서 여러 번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고 역사하신 것으로 기록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일시에 500명의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것은 왜 그런가 하면 기록하는 사람은 단편적으로 그 중에 대표적인 것만 기록했기 때문이고, 이러한 기록상의 문제로 오늘날 후세에 성경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1: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고린도전15: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다음 구절은 주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이란 말씀은, 예수님의 하나님이여야만 우리의 하나님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너희가 믿는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야 한다는 것을 명백히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 같은 나라도 수많은 신들을 섬기고 있고 힌두교에서는 삼신일체 라고 해서 ‘브라만 신’(창조의 신), ‘비슈노신’(창조물을 보존하는 신), ‘시바신’(창조를 파괴 혹은 수선하는 신) 등이 있고, 이 세상에는 ’여호와 신’보다도 더 훌륭한 신이 수없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출애굽기 20장 3절-5절에 보면 “너는 나 이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은 여호와 신의 성격을 간단명료하게 표현한 말입니다.
'질투하는 신'에서 질투하는 (Jealous)은 원어로 קַנָּ֔א (칸나)입니다.
'나 이외에 다른 신들을'에서 신들은 원어로 'אֱלֹהִ֥֨ים(엘로힘)'이고 이 구절을 ’우상을 두지 말라‘라고 해석하는 기독교 단체가 있는데 잘못 해석 한 것입니다.
4절의 '우상 (Carved image)'은 원어로 'פֶ֣֙סֶל(페셀)֙'로서 다른 단어입니다.
따라서 다른 우상이나 신들을 두지 말라는 뜻입니다.
또한 우상을 둔다고 해서 질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내용을 어디서 볼 수 있느냐하면 야곱이 라벤을 떠나 ’길르앗‘으로 떠날 때 라헬이 그녀의 아버지의 ’드라빔‘(아셀라 목상 household gods)을 훔쳐서 도망을 간 후 라반이 삼일 후 그 일을 알고 쫒아가서 야곱에게 “어찌하여 내 신을 도둑질 하였느냐?”하고 묻고 야곱의 장막에 들어가 수색을 했으나 찾지 못했고 라헬은 그 드라벨을 낙타 안장에 넣고 생리 기간이란 이유로 낙타위에 그대로 앉아 있어서 그 ‘드라빔’을 찾지 못했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은 여호와를 섬기면서 이와 같은 우상을 지니고 다녔던 것입니다. 
이것은 족장시대의 우상으로 재산 상속의 징표로 지니고 다녔습니다. 
따라서 형상으로 만든 우상은 여호와 신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신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질투하는 신'이란 말은 나보다 더 위대한 신 혹은 큰 신을 두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내 하나님, 너희 하나님”으로 말씀하셨고 예수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질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능력이나 지식으로는 하나님을 실제로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예수님을 알고, 신뢰함으로써 예수님의 아버지 되시는 아버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정확히 파악함으로서 예수님의 말씀과 인식이 우리 심령 속에 확실히 들어 있을 때 예수님의 아버지 되는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백천(白泉) 김준식

KKU


 
 

Total 462
번호 설교제목 설교일자 성경구절 글쓴이 조회
462 하나님의 선물 1994.03.27 요14:12~17 관리자 1590
461 요한복음강해 1980.10.05 요20:19~31 관리자 1034
460 성전보다 더 큰곳 1983.03.27 마12:01~08 관리자 2413
459 빛과 눈 1986.11.23 마06:22~23 관리자 2510
458 신자의 생활조건 1980.12.14 마07:07~12 관리자 2126
457 요한복음강해(15:16~27) 1980.06.01 요15:16~27 관리자 1858
456 씨의 의미 1989.04.02 마13:18~32, 13:36~42 관리자 1612
455 요한복음강해(20:11~18) 1980.09.28 요20:11~18 관리자 1932
454 요한복음강해(19:31~42) 1980.09.14 요19:31~42 관리자 1827
453 천국일원이 될수있는자들 1980.11.02 마05:01~12 관리자 1801
452 요한복음강해(19:12~22) 1980.08.31 요19:12~22 관리자 1676
451 요한복음강해(19:01~11) 1980.08.24 요19:01~11 관리자 1689
450 요한복음강해(18:28~40) 1980.08.17 요18:28~40 관리자 1832
449 요한복음강해(18:19~27) 1980.08.10 요18:19~27 관리자 1849
448 요한복음강해(18:12~18) 1980.08.03 요18:12~18 관리자 2289
 1  2  3  4  5  6  7  8  9  10    

교회소개 l 찾아오시는길 l 예배안내 l 개인정보취급방침 l 이메일무단수집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