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교회
 
작성일 : 19-02-27 12:51
설교제목 : 신자의 생활조건
 설교일자 : 1980.12.14
 KEY WORD : @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아버지 대접
 성경구절 : 마07:07~12
 관련구절 : 눅11:09~13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126  


0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0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0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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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경 말씀은 신자의 생활 태도, 조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세 가지 목표와 조건을 우리에게 명확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세 가지 목표를 향해 이행하지 않는 자들은 신자의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참 신자라 하는 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단체나 조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교인들이 교회라는 종교단체에 속하여 그 조직이 만든 단체에 가입되어서 그 조직은 점점 대형화 되고 조직화되어서 세속적인 단체와 유사하게 운영되는 경향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곳은 신도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그를 볼 수 있고 그와 교통할 수있고 신자를 생명으로 이끌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니라』라고 주문하셨습니다.
'구하라'란 말의 그리스어 원어는 '이이테오(Αἰτεῖτε)'로 ‘구하다, 요구하다’의 의미이며 히브리어로 ‘샤알’은 '묻다, 심문하다, 질문하다'의 뜻으로 '이이테오'는 70인 역본에서 '샤알'의 역어로 사용됐습니다.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는 한 구하는 것이 있을 것이고 ‘무엇을 구하는가?’ ‘누구에게 구하는가?’에 대해서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신자가 구하는 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구하고 추구하는 것과는 틀려야 됩니다.
즉 신자가 구하는 것은 이 세상의 존재자로서는 아무도 그 생명을 우리에게 줄 수 없습니다.



인류의 원  조상은 400만 년 전에 동아프리카 밀림에서 살았고 현 인류는 30만 년 전부터 ’호모 사이엔스‘로 아프리카 지역에서 살았던 과학적인 증거가 밝혀졌습니다.
인간은 현 인류 조상 때부터 많은 것을 구하여 왔으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 진리를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땅위에서 장수한다고 해도 백세 이상 살 수가 없고 결국은 이 땅위에서 없어져서 흙이 되고  일부는 광물이 되어 땅 속에 파묻혀 있을 것입니다. 
30만 년 전에 죽은 인류는 죽은지 30만년이 되고 400만년에 죽은 원 조상은 죽은지 400만년이 됩니다.
인간이 백세를 살았다고 해도 그 생존 기간은  짧은 찰라 같은 순간을 산 것입니다. 
그 죽음은 인류의 멸망 때까지 영원한 것이고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무한대입니다.
인간이 사망의 골짜기를 면하려고 옛적이나 오늘날 까지도 갖은 노력을 해 보지만 그 해답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과거의 성인이나, 위인이나 문인들과 철인들이 듣기 좋고 감명스러운 글귀로 말하고 기록을 남겼지만 사망에서 벗어나가는 돌파구를 찾은 사람은 예수님 밖에는 없었습니다.



이 돌파구를 누구에게 구하는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는 자는 구함을 들어 줄 수 있는 분이 생기는 것이고 그 분을 삶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 신자의 의무입니다.
이 삶 속에서 구함을 들어 줄 수 있는 자를 찾아서 생명의 문제를 구하는 자에게는 예수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고 약속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많은 교인들이 사도 바울의 종교의식으로 내려온 ‘믿음’으로 인해 의심 없이 믿으면 된다는 식의 가르침으로 의식이 박혀 예수님의 『구하라 그러면 너희게 줄 것이요』의 의미를 모르고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실상입니다.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에서 ’찾으라.는 제테오(ζητεῖτε)로  단어 원어 원형은 ’제테오(ζητέω)로 '탐색하다, 찾다, 탐구하다'의 뜻입니다.
과거의 현인이나 성인들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깨달은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으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을 가르쳐 준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지구가 얼마 가지 않아서 어떠한 상태로 놓일지 예측 못할 현실에서 과거에 살아온 생각과 행동대로 앞날을 생각하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진리를 찾을 경우에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생명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할 것이며 그 길을 볼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탐색하라, 찾으라 하신 말씀은 이 구태의연한 생각을 버리고 네가 먼저 실행하여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에서 ‘두드리다는 원어로 ‘크루오(Κρούω)’로  ‘때리다, 치다(strike), knock’의 뜻입니다.
여기서 두드리다 는 말은 투쟁하라는 의미입니다.
내 안에 있는 몇 겹의 벽을 힘을 다하여 무너뜨리라는 뜻입니다.
내 앞에 막혀 있는 길, 인류 앞에 가로막혀 있는 길이 우리 앞에 심각하게 놓여 있습니다. 
강대국들은 저마다 살상 무기를 현대화 및 효율화 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 현 실정입니다. 
현 세계는 누가 음직이냐 하면 군대이고 이 군대는 세상을 파괴하고 살상무기를 만들고  시험하고 개발하며 그들의 힘을 과시하고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그들은 무기의 개발을 과학의 발달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살상 무기를 개발하고 현대화하는 것이 과학이 아닙니다.
과학의 본분이란 ,사람의 앞길을 죽음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길이 그 근본 과학의 본분인데도 불구하고 사람을 더 죽일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 내고 연구하고 개발에 경주하는 것이  과학의 힘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노력을 날이 갈수록 더 가속화 할 경우에 이 세상의 앞 길은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고 멸망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신자의 목표와 태도에 대해서 말씀하신 세가지 말씀은 조금씩 그 의미가 다릅니다.
먼저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라는 말은 ‘구하면 내 손에 잡아 쥘 수 있다' .'찾으면 찾아낼 (발견 할) 수 있다'라는 모두 능동적인 말씀이고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우리가 능동적으로 잡을 수 있도록 놓아주시며 찾는 자에게는 발견 할 수 있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서 쥐지 않고 찾지도 않는 사람에게는 잡을 수 있도록 하지 않으시고 찾을 수 있도록 하시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두드리다(노크를 하다) 그러면 열릴 것이다'는 수동형이고 이 말은 가장 어려운 말이지만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이다』라는 말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열어 주실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이 뜻은 열어 주는 자가 있어야 열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전해 주는 약속의 말씀은 신자들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며 그 길을 찾기 위해서는 예수님께 구하고  또한 항시 등불을 켜고 깨어 있는 상태로 찾아서 내 앞에 놓인 영원한 사망에 골짜기에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 돌파구의 문을  찾고 발견하면 그 다음에는 두드리라는 가르침입니다.
그 문을 두드리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벽에 위치한 문을 발견하고 노크를 하면 내게 열어 줄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하신 말씀  자신의 안위 속에서 구해지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편안한상태로 깨달음을 얻고자하는 자는 절대로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늘나라는 노력하는 자의 소유이지 노력하지 않고 안위를 추구하는 자에게는 그 문이 닫혀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두드리는 자와 쟁취하고자 하는 자에게 열리는 것입니다.



인간이 사망의 세계에서 생명과 구원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은 나 자신으로부터 출발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가8:36/마태16:26/누가9:25절에서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생명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나?』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아무리 예수님을 따르는 신자라해도 내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내가 나의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구하고 ,찾으며(탐색하며), 두드려서 나 자신부터 시작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신뢰(믿음)라는 것은 쌍방적입니다.
내 자신이 아무리 예수님을 신뢰 한다고 해도 예수님이 나를 신뢰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 7장 21-23절에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병자도 고치고, 귀신도 쫒아내고  표적도 행함을 행하였나이다’라고 할 때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라고 응답하신다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신뢰를 인식해 주어야 되는 것이고 이것이 구원의 원리인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 중 그 일부가  대형 교회 건물을 짓고 교회 지붕에 십자가를 달고서 예수님 진리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예배를 드리고 있는 실정을 볼 수 있고 그와같은 예배에는  예수님께서 ‘나는 너희를 모른다’라고 응답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마가8: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우리가 예수님께 구하기 위해서는 기도의 형태로 구하게 되고 그 기도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해 주는 기도여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하는 기도는 이 세상에서 무엇을 얻고자 바라고저 하는 이기적인 기도는 절대로 응답 해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는 기도하는 사람의 자격이 필요합니다.
오늘 읽은 성경 말씀 중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나』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구하는 것 이상으로 응답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기도하는 자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돼야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서로 상통할 수 있는 유기적 관계가 형성 될 때 그와같은 기도는 반드시 응답이 있을 것입니다. 
기도는 기도 내용에 따라  간절히 구한다음 미리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고 현재에 이루어지는 경우와  미래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대형 교회에 교회 내 지도자들 간에 분열이 생길 때 ,타 교회의 가르침이 올바르지 않다고 해서 기도로서 상대방 개인이나 교회의 지도자를 질타하며 저주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더 가관인 것은 본인의 기도가 하나님께서 이루어졌다고 하고 주장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기도는 하나님이 들어준 것이 아니라 거짓 신의 작용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는 기도하는 신도가 그 내용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 합니다.
영원한 사망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께서 빛을 비춰주시는 그 빛을 쫒아가는 길을 찾기 위해서는 삶 속에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서 우리의 생활을 기도화 해야 되는 것입니다.



12절에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다』이 구절은 누가복음 6장 31절에도 기록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내가 상대방에게 대접을 하는 것은 ‘내가 상대방에게 대접을 받을 경우를 기대하기 때문에 너희가 대접을 하라‘라고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정신에 맞지를 않고 누가 6장 27-30절과 35절에 있는 예수님의 핵심 정신과는 어긋나는 것입니다.
35절에 예수님께서 명확히 말씀하신 것은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라』라고 우리에게 가르치셨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 『오른 빰을 때리면 왼편 빰도 돌려대라』,『오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리를 가라』라고 말씀하셨으며 예수님께서는 상대방을 도와준다든지, 대접한다든지, 용서한다든지 하는 일은 예수님의 핵심적인 사랑의 실천이고 그에 대한 보상이라든지 대접을 받을 생각등은 아예 하지 말라는 우리에게 주문한 숭고한 가르침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동안 우리에게 보여주신 최고의 가치는 '내 생명 까지 희생해서라도 상대방을 돕고 사랑을 베풀 때에도 그 행위로 끝내라 하신 말씀입니다.



12절 끝에 보면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 구절은 마태복음 저자가 구약에 있는 율법의 윤리와 제도를 근거로 삽입한 구절로 예수님의 정신과는 앞뒤가 맞지 않는 구절입니다. 『』』
구약에서의 가르침은 서로 대등하기 때문에 상대방에 하나를 주면 하나를 받아야 된다. 
다시 말하면, 동등한 사례에 대한 동등한 법칙,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에 근거를 둔 것입니다.
출애굽기 21장 24절과 레위기 24장20절에 잘 표현 되어 있습니다.
이 지침은 유대나라의 법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세계 각국 여러 나라 에서도 비슷한 윤리와 제도가 있는 것입니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이와같은 생각과 지침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그 가르침과는 어긋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21:24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레위기24:20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



현재 세계 도처에 있는 많은 교회에서는 예수님의 핵심 정신과 가르침을 이스라엘의 율법과  정신으로 혼돈해서 뒤죽박죽 해석을 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예수님의 새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 가르침은 옛것과 섞여서는 안 되며 예수님을 신뢰하는 자는 예수님의 그 숭고한 정신을 깨닫고 준수할 때 예수님을 따르는 참 신자의 자격을 갖춘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하나님을 모른다하는 자들 뿐만 아니라 안다고 하는 자들에게도 예수님의 그 핵심 정신을 전해 주어서 저들을 깨우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백천(白泉) 김준식

K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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