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네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네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심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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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말씀도 사람의 몸에 눈이 반짝이고 있으니까 그것을 예수께서 몸의 등불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다.
여기서 눈이라 하는 것이 자기 몸의 등불이다.
그런고로 눈이 나쁘면 우리 온 몸이 어두워진다 그 말이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잘 발견하기 힘들어서 그렇지 대단히 과학적이다.
예를 들면 가로등 밑에 등을 달았는데 그 등은 가로등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 즉 그 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등이다.
가로등 자신에게 필요한 등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몸에 있는 등불을 길가의 가로등밑에 달아놓은 등으로 알고 있는 것이 현재 교회이다.
얼굴에 달려있는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나니까 그것을 등불이라 한 줄 알고 있다.
그렇지 않다.
등불이라 번역되어 있지만 원어 뤽노스(λύχνος)의 상징적인 의미는 빛이다.
그런데 이 빛은 자기 몸을 위한 빛이다.
몸에 들어가는 빛이다.
그런고로 눈을 통해서 빛이 자기 몸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이다.
눈이 나쁘면 자기 몸으로 빛이 들어가지 못한다.
오늘날 우리들이 생리적으로 보더라도 눈동자는 아주 작은 크기지만 그곳을 통해 빛을 받아들인다.
그 다음 그 빛을 통해 망막에 물체의 상이 맺히고 그것이 시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되어 인식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고로 눈은 우리 몸의 빛이다.
눈을 통해서 우리 몸 자체가 빛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눈을 통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밝히 보고 인식한다.
그러므로 눈이 온전해야 한다.
여기서 온전하다 라는 말은 원어로 하플로스(ἁπλοῦς)인데, 이형용사는 깨끗한, 순수한, 잡물이 섞이지 않은, 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눈이 깨끗해야 한다, 잡물이 섞이지 않아야 한다 그런 말이다.
우리의 눈이 깨끗해야만 빛이 눈으로 들어간다.
이 빛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빛이다.
하나님의 빛이 우리를 통해서 들어간다고 하면 이 눈은 무슨 눈인가?
바로 심령의 눈이다.
이 눈을 원어에서도 복수인 오프달모이(οφΘαλμοι)가 아닌 단수 오프달모스(ὀφθαλμός)로 썼다.
육체의 눈이라고 하면 복수로 써야 하는데 단수로 썼다.
다시 말하면 한 사람에게 심령의 눈, 영혼의 눈은 단 하나이다.
이 눈이 완전해야한다.
만약 이 눈이 병들어 있다면 우리가 인식하고 아는 것이 잘못되기 쉬운 것이다.
어떤 사람이 근시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가까운것 외에는 못 본다.
멀리 있는 것은 볼 수가 없거나 혹은 잘못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희망이 없다.
우리의 눈은 저 천국까지도 바라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또 우리 눈이 색맹이라면 어떠할까?
색맹은 색깔을 제대로 구분 못한다.
노란색을 붉은색으로 보고 푸른색과 녹색을 구분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가 하면, 완전 색맹은 전혀 색깔을 구분하지 못한다.
우리 심령의 눈이 색맹에 걸렸다고 생각해보라.
우리의 인식은 모두 뒤틀려 세상을 착각하면서 살 수 밖에 없다.
옳은 것을 옳은 것으로 보지 못하고 그른 것을 그른 것으로 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예수께서 눈을 예로 들었지만, 눈뿐만 아니라 또 다른 인식을 위한 기관인 귀도 마찬가지다.
모든 인식의 기관이 완전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진리의 세계, 생명의 세계, 빛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빼어버리는 것이 낫다 그런 이야기이다.
눈이 우리 지체 가운데 아주 작은 것이지만, 그러나 빛을 받아서 우리 몸 전체를 밝게 하는 그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가장 작은 부분에 해당하는 것이 아주 큰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완전한 눈을 갖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추구해야하는 목표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완전한 눈을 갖기 위함이다.
그리고 우리의 눈이 근시라든가 혹은 색맹이 걸렸다고 한다면 반드시 예수님으로부터 고침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눈이 없으면 내 몸은 빛이 없다.
빛은 내 눈을 통해서 내 몸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다음에 빛과 눈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눈이 있어도 빛이 없다면 소용이 없고 또한 빛이 있어도 눈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그런데 이 빛은 누가 보내 주는가?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내 주시기 때문에 빛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항시 빛이 있는 곳으로 향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자기 눈이 있어도 빛 없는 곳으로 돌아다닌다면 그 사람은 소경과 마찬가지이다.
빛은 눈을 하나의 사자(使者)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 하면 바로 눈동자와 같은 존재이다 그런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올바른 하나의 눈이라 하면 하나님의 빛을 세상에다 들여보내 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들에게 차별 없이 그 말씀과 빛을 온 천하에 보내준다.
그렇게 보내 주지만 그러나 그것은 인간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이미 만들어 놓은 창조의 법칙에 따라 그렇게 되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간이 언제나 계속될 수는 없다.
시간이 오면 빛은 거두어지게 되어 있고, 이 땅위의 모든 존재들은 정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 땅의 인간들에게 차별 없이 빛을 보내는 것도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온전한 눈동자를 가져서 빛을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말씀 가운데 중요한 말이 있다.
그것은 진리 그 다음에 빛 그리고 생명이다.
이 세 가지 말이 중요하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자존자(自存者)이시다.
누가 낳았거나 만들어 준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있는 분이시다.
어떻게 스스로 있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연구하면 너무나 힘들고 인간의 지혜로는 깨닫기 힘들다.
하나님은 자존자이신데 어떻게 자존자가 생기는가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진리이다 했다.
진리라 하는 것은 자존이다.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자존에 관한 것 중 그래도 가장 인식하기 쉬운 것은 진리이다.
진리는 자존한다. 자존하는 것이 진리이다.
하나님이 자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진리 역시 자존한다.
다음에 생명이란 문제는 오랫동안 연구하고 있지만, 간단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 빛은 자존이다.
이 빛은 누가 만든 것이 아니다.
창세기에 보면 여호와가 빛이 있으라 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빛은 누가 만든 것이 아니다.
이 세상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서 비교적 가까운 말로 빛이라 했지만, 이 빛은 우리가 생각하는 빛과는 다른 것이다.
이 빛 역시 자존하는 본체 중 하나이다.
다시 말하면 이것으로 말미암아 모든 세상의 에너지가 나오게 되고, 모든 움직이는 혹은 존재하는 물질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고로 예수께서 우리에게 말해준 세 가지 자존성을 말할 때 천국의 이치를 세상 말로는 완전히 표현할 수 없는 고로 가장 가까운 말로 표현해 준 것이다.
그 가운데 빛이라는 것 역시 자존성을 가지는 것이다.
빛은 우리 눈에 인식되지 않아도 빛은 빛이다.
우리 눈이 인식할 수 있는 파장의 범위는 400-800 나노미터이다.
그 보다 짧은 파장 혹은 긴 파장은 인식하지 못한다.
이 우주 간에는 많은 빛이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이 빛이라는 말은 자존성을 표현하는 적절한 말은 못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라는 말은 있는 그대로 진리이지만, 이 빛은 우리가 알고 있는 빛과는 다르며 표현 못할 자존성을 갖는 존재가 있다 그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 자존성 존재는 진리와 빛과 생명인데 이것은 곧 하나님의 본체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인격적 존재가 아닌 것이다.
인격적 존재는 인격적 존재가 아닌 것을 인식하기 힘들므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속성을 대표하는 존재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 말로 저 천국 진리의 일단을 표현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성경만 가지고는 하나님의 이치가 완전하게 표현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 심령 가운데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초로 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적세계 혹은 영적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지경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친다 하는 것은 이 세상 말로 가르친다는 의미가 아닌 것이다.
이 말을 초월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존적 존재에 대해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런고로 오늘 이 말씀은 대단히 중요하다.
인체 가운데 눈이 내 속을, 내 안쪽을 밝혀주므로 내 눈은 온전해야한다 그것이다.
그리고 이 눈은 온전함과 동시에 빛을 가져야하고 또 늘 빛이 있는 곳을 향해야한다.
그리고 이 자존적 존재의 빛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보혜사를 약속하신 근본 이유도 이 빛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들어오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이 빛을 받고자 한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향해 정면으로 똑바로 서 있어야 한다.
등지고 서 있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 말이다.
내가 없다고 하면 하나님은 내게 아무 소용이 없다.
그리고 내 존재는 예수님의 빛을 받기 전에는 모른다. 빛을 받아야 사는 방법을 인식할 수가 있는 것이다.
백천(白泉)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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