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교회
 
작성일 : 20-12-02 10:06
학력(學歷)과 학력(學力)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420  


 
 
 내가 처음 사회에 나가 근무하던 직장은 정부의 공기업이었다. 
어느 직장이나 마찬가지로 처음 입사수속을 밟을 때는 이력서라는 것을 썼다. 
이력서에는 성명, 본적과 주소, 학력과 경력, 소지한 면허 등을 적게 되어있다. 
물론 최근에 찍은 사진도 첨부한다. 
이력서에 표시한 내용을 증명할만한 부속서류도 구비하여 그 사본을 첨부해야한다. 
그런데 내가 작성한 이력서상의 학력(學歷)에는 단 두 줄밖에 쓸 것이 없었다. 
고등학교와 대학의 이름이었다.

 
그런데도 시험성적이 괜찮았었는지 입사시험에 합격되어서 공채로 입사하였다. 
소속부서를 옮겨가며 일을 배우고, 배운 일에 대하여 열심히 근무했다. 
선배들로부터 칭찬도 들었고 좋은 직장동료들도 사귀면서 지냈다. 
같은 회사에서 16년간을 근무하면서 별 탈 없이 지냈었다. 
항상 부지런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해서 업무를 수행하는데 능률을 찾아 했으므로, 나에게 마껴진 일에 대하여는 용이하게 책임을 완수할 수 있었다.

 
배운 경력을 학력(學歷)이라한다. 
어느 학교를 언제 졸업했는지를 말하는 것으로 한 번 졸업한 학교는 일생동안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해보니 또 다른 학력(學力)이 존재하고 있었다. 
다른 말로 실력(實力)이었다. 
겉으로 학벌은 근사한데 그 사람의 실력은 보잘 것 없는 경우도 있고, 실력은 발군하지만 인격이 말이 아니어서 사람들의 지탄(指彈)을 받는 것이었다. 
그 때 내가 느낀 사실이 학력(學力)이란 것이었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 교수한분이 계셨다. 
당시에도 연세가 많으신 전기공학을 공부하신 분이다. 
교수님은 일제 때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한 것이 학력(學歷)의 전부였는데, 독학(獨學)으로 공부하셔서 교수까지 올라온 분이다. 
일제하에서 한인으로는 처음으로 기사일급(技士一級)의 자격을 획득하셔서 천재요 노력가로 명성이 있었다. 
선생이 가르치시는 학문은 매우 독특해서 어느 문헌에도 없고 어느 책에도 없는 일종의 고등수학이었다. 
예를 들면 우주로 통하는 사다리가 있는데 그 사다리의 궤적을 계산한다든가, 또는 달팽이집의 안쪽의 나선형궤적을 유추해서 체적을 계산하는 등, 실용과는 거리가 먼 일종의 추상수학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미적분(微積分)의 이론을 활용하고 라프라스이론에 입각한 고등 수학의 원리를 적용하는 일이었지만, 교수께서 창안해낸 학문이었다. 
당시엔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과목이었다. 
우리들은 모두 교수님을 존경하였고, 교수님의 강의시간에는 교실 안을 모두 정리하고 숙연하리만큼 스승을 맞이하였다. 
그분의 존함은 김준식 교수였다.

 
교수님의 강의내용을 이해하는 학생은 거의 전무하였는데, 시험 때가 되면 골칫거리였다. 
문제 하나를 정상적으로 풀려면 몇 시간이 걸려도 다 풀지 못하였다. 
그러나 시험은 치러야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성명과 학번을 쓰고 시험문제를 답안지에 옮겨 쓴 다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까지 만을 말로 개요를 설명하고 선생님께 호소하는 글을 정중히 써야 했다. 
누구도 좋은 학점을 받지는 못했지만 표현 정도에 따라 B학점이나 C학점을 주셨다. 
지금도 그 당시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선생님은 학력(學歷)은 보잘 것 없으나 학력(學力)이 발군하신 분이다.


 ‘아는 것이 힘(知力)’ 이란 표어는 ‘배운 것이 힘(學力)‘ 이란 말과 일치한다. 
그러나 사회는 학력(學歷)을 중시하고 학력(學力)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소위 간판교육을 중시하다보니, 가짜학위소동이 시도 때도 없이 문제를 야기한다. 
간판을 보고 사람을 채용하고, 배경을 보고 인재를 등용해서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같은 학교를 나온 동문들끼리 똘똘 뭉쳐서 서로 힘겨루기를 자행해서 단체나 기업 안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암투가 계속됐다. 
능력중심으로 인재가 발탁되고 중용되어서 적소(適所)에 적재(適材)가 앉아야 제대로 되는 사회일 것이다. 
그러나 어디를 가든 소위 정치적(政治的) 또는 (政略的)이란 명분으로 인재등용의 명분이 상실되어왔다. 
이는 모두 각자의 영리(榮利)를 목표로 모여진 집단이므로 전체를 고려하지 않는다. 
이처럼 모여진 집단은 스스로의 무능을 호도(糊塗)하려는 수단으로 부정과 비리를 일삼고 그 것들을 은폐하려는 수단을 감행한다.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모순(矛盾)을 셀 수 없이 보아왔다. 
힘을 잡은 그룹은 자신을 보호할 목적으로 요정(料亭)에서 모이고, 외면당한 그룹은 탁주(濁酒) 집에서 모인다.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자신을 지킬 수단을 마련하고, 외면당한 그들은 세월 만나지 못함을 한탄한다. 
이런 사회적 갈등은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온 고질적 병폐였다.

 
배우는 것은 간판만으론 되지 않는다. 
사회가 언제부터인지 간판 중심으로 사람을 고용하는 폐습에 젖어서 너도나도 학교 가는 일을 서두른다. 
도시의 자제들도 농촌의 아들딸들도 모두 도시로 모여서 학교엘 가고 또 가려고 머리를 싸맨다. 
그래서 대학은 소위 우골탑(牛骨塔)이란 별칭을 얻었다. 
농촌에서 자식을 가르치려고 소를 팔아서 학비를 조달하고, 대학들은 그 소판 돈으로 부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의 본질은 간판에 있지 아니하고 개인의 능력을 키우는데 목적을 두어야한다.

 
사람은 획일적일 수가 없는데 현대교육은 집단으로 획일적으로 가르친다. 
많은 학생을 수준을 선별해서 교육시킬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르치는 교사의 수도 문제가 된다. 
사람이 모이면 자연히 우열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니 모두가 우등생일 수가 없어서 순위가 정해진다. 
소위 시험에 의한 등차가 결정되면 항상 1등에서 꼴찌가 나오게 마련이다. 
현대교육방식이 이처럼 등차(等次)를 만들어서 학생을 우열 순으로 가려내어서 인성교육에 큰 문제를 만든다. 
어떤 큰 그룹으로 분류해도 되는데 1.2.3.4...순으로 성적을 매김 함으로써 학생자신이 자신의 등수를 확인하게 되어 열등감과 우월감을 갖고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인생은 학교의 성적순으로 성공하지 않는다. 
교육방식의 폐단으로 소년기의 성격을 비뚤어지게 오도함으로써 사회에 큰 문제를 잉태시킨다. 
사람은 일찍 깨이는 사람 있고 늦게 깨이는 사람 있어서 감성이나 지능의 발달이 상이하다. 
획일적인 판단기준이 많은 피해를 주는 데도 교육방식은 고쳐지지 않는다. 
사회가 잘못되는 원인의 책임은 전적으로 교육방식에 있다.

 
내가 여기서 간판 중심의 학교졸업과 실질적인 능력이 서로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내가 근무했던 회사에서는 연초가 되면 인사부서에서 나에게 초등학교와 중학교졸업내용을 알려달라고 독촉하였다. 
그러나 나는 알려줄 것이 없었다. 
나의 학력은 고등학교로부터 시작해서 대학으로 끝났으니 말이다. 
알려줄 내용이 없다고 말해도 매년 연초가 되면 독촉이었다. 
그러나 조직에서는 최종학력을 기준으로 선별되었으므로 중간과정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어느 날 우리나라의 교육문제를 생각하다가 실제로 경험했던 사실을 상기하고 몇 자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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